최근 지역 청소년들이 영화.연극제에 나가 잇단 개가를 거두면서 우리 지역 '문화새싹'은 기성세대의 척박한 문화의식과 확연히 차별화될 것인가는 기대를 낳고 있다.
지역의 영화관련 고교동아리는 화원여고 동아리 '일루전(Illusion)' 등 20여개에 달한다. 대구 봉산동 청소년 문화센터 '우리세상'엔 '세상담기'란 이름의 연합동아리도 활동중이다. '언더'로 움직이고 있어 잘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이들은 지난달 27일 청소년 문화 한마당에 영화제를 기획, 10편을 출품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1일엔 자기들끼리 국채보상공원에 모여 청소년 영화제도 열었다.
최근 열린 제5회 전국청소년 연극제에서 대구 대표로 출전한 대구 동부여고가 '소리없는 만가'로 지난 5일 우수상과 우수연기상(정비나 양)을 받았고, 경북대표로 출전한 청도 모계고의 정진혁군도 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전국청소년연극제에서 대구.경북 지역 출전학교가 받은 상으론 지금껏 최상급. 지난 9일 부터 11일까지 대전엑스포 과학공원에서 열린 제1회 전국청소년영화제(2001년 대전 영상축제). 대구고등학교 2학년 재학중인 양기원군이 연출한 '끼아베'가 고등부 은상을 수상했다. 또 대구독립영화협회소속으로 대학 재학중인 김삼력씨와 곽민진씨도 'Gordian Knot'와 '화려하지 않은 고백'으로 각각 대학부 동상과 장려상을 거머쥐었다. 사실 양기원군과 김삼력씨 등은 이번 대회뿐 아니라 각종 대회에서 여러번 수상경력을 갖고 있다. 양군은 지난해 '부재중'이란 영화를 연출해 광주국제청소년영상축제 대상를 받은 바 있고 올해에도 '끼아베' 로 서울시민영상제 대상을 수상했다. 김씨도 올해 같은 작품으로 제2회 인디카노국제영화제 실험영화부문 본선, 제3회 K-TV영상제 장려상 등을 수상한바 있다.
경기 침체와 함께 문화의 척박지로 일컬어지는 대구.경북에서 자라나는 신세대는 뭔가 달라보인다. 지역에서 문화청소년들이 그 어느때보다도 왕성하게 자라나고 있다. 그러나 청소년들의 자생적인 이같은 열기에 비해 이들을 제대로 북돋워줄 환경은 여전히 척박하다는 지적이다. 가장 영향을 미치는 학부모와 학교의 분위기가 우선 성숙돼 있지 않다. 인프라는 더더욱 미비하다. 양기원군의 어머니 정춘옥(42)씨는 그래도 아이의 적성을 키워주기로 마음먹은 사례다.
"아이가 좋아하고 그 일을 할때 만큼은 행복해 보여요". 양군은 중학교때 방송반을 하면서 카메라(8mm캠코더)와 자연 친해졌다. 그러면서 이것 저것을 찍어 조금씩 '잘 찍는다'고 주위 입에 오르더니 고등학교 들어와 곧잘 대회에 나가 상을 받아 오기에 이른다.
상위권이던 성적은 조금씩 떨어졌지만 정씨는 아이의 재능을 보기 시작했다. "2가지 모두 잘 할 수는 없지요.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을 밀어주기로 했고 올해부터는 소품이 필요하다면 구해주기도 하면서 조금씩 도와주고 있어요".
그러나 정씨가 서서히 관심을 가지면서 본 대구의 인프라는 너무 척박했다. 양군은 카메라를 다루고 편집하는 등의 모든 일을 혼자서 해결했다. 그는 동아리에도 소속돼 있지 않은 상태다. "서울 등 수도권 지역엔 청소년 영화제가 꽤 활성화되어 있는데 비해 지역엔 거의 없는 것도 그렇고, 아이가 상 받으러 가면 서울쪽 아이들은 한 작품에도 여러 명이 역할을 나눠 공동으로 수상하는데 우리 아인 혼자 다 하니까…". 그래서 연극영화과쪽으로 진로를 택한 아이가 갈 대학도 일찌감치 서울로 정해 놓은 상태다.
올 전국청소년 연극제에서 우수상을 받은 대구 동부여고의 연극반 지도교사 조광수(43)씨. "대구 청소년 연극의 역사는 11년째로 고교 연극반도 23개에 달하는 등 전통은 깊지요". 이 대목은 그나마 이번 대회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이유가 될 듯. 그러나 금방 "그럼에도 아직 부산 영상고와 같은 관련 특수고교 하나 없고 기성극단의 지원도 전무한 편"이라는 푸념이 나온다. 게다가 서울, 경기 등과 달리 보수적인 지역 의 학부모들은 아이가 연극쪽으로 전공을 살리는데 기꺼워 하지 않는다는 귀띔이다.
자꾸만 아이들의 키는 커가는데 이를 담아낼 적절한 틀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지역의 답답한 현실. 어른들이 지혜를 모으지 않으면 아이들은 고향 땅을 등진채 꿈을 찾아 상경하거나, 아니면 스스로의 꿈을 무릎 꿇리는 일이 되풀이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배홍락기자 bhr222@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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