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데스크-대입 수험생들에게

모두들 힘드실텐데 저까지 어려운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올해 수능시험을 본 고3 딸을 둔 아버지입니다. 딸에게도 할 기회가 잘 없었던 이야기, 제가 살아 본 경험담을 함께 나눠볼까 할 뿐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30년이나 됐습니다만 제게는 지금도 아쉬운 게 하나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보니 어떻더라, 저 앞에는 이런 저런 일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그리 알아라… 하고 저 멀리 기다리고 있을 세월과 삶을 제대로 예시해 주시는 분이 없었던 것이 그것입니다. 저는 그 길에 대해 듣고 싶고 알고 싶어 목이 말랐었습니다. 그러나 결국엔 그저 참고서나 들고 앉았어야 했었지요.

수험생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가장 애 타 하는 것은 어느 대학에 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일 터입니다. 학과도 중요하나 어느 대학이냐에 더 많이 구속되고 있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대구냐 서울이냐로 갈등하는 사람도 적잖겠지요?

◈'인간만사 새옹지마'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잠깐 숨을 한번 돌려 보십시다. 언젠가 중동 건설 붐이 일었던 적이 있었고, 덕분에 아랍어과 졸업생들이 인기를 끌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습니다. 1970년대였다던가요? 하지만 아랍어과가 그 이전에도 그만큼 인기가 있었는지는 알기 힘듭니다. 지금은 중국이 우리의 최대 교역국으로 부상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제가 대학에 입학할 즈음에는 중국어 관련 학과들의 인기가 그렇게 높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또다른 이야기도 있습니다. 10년 전쯤에 성공했다고 부러움 샀던 제 고교 친구들 중 몇몇은 지금 아주 어렵습니다. 월급을 많이 받는다고 모이면 술값을 도맡아 내던 대기업 입사 친구들 중 상당수는 지금 그 회사 밖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조금은 부러운듯 곁눈질하던 몇몇 친구들은 지금도 조금 작아 보이던 그 첫 직장에서 잘 일하고 있습니다.

어떤 친구는 젊은 기분에 다소 빛나 보이는 기관에 들어 갔다며 좋아했었지만, 지금은 일에 치여 몸뿐 아니라 영혼까지 망치고 있습니다. 그때 제대로 직장을 못잡아 힘들어 하던 어떤 친구는 그 뒤 한직을 하나 얻어, 그 덕분에 지금은 더 인간답게 주체적으로 삽니다. 건강을 걱정해야 하는 쉰 살 가까운 지금 나이에서 제게 더 부러운 쪽은 한직에 있는 친구입니다.

이런 일들을 봐 오면서 저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 "어느 것도 영구한 것은 없다"는 경전의 말씀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인간만사 세옹지마"라는 중국의 고사성어도 마찬가지입니다. 20, 30대 때야 그저 답안 쓸 용도로나 그 뜻을 새겼던 구절이었지만 지금은 정말로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이쯤에서 제가 드리고 싶은 제안이 있습니다. "지금이 아니라 40대가 됐을 때 혹은 50대가 됐을 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0, 30년쯤 뒤에 여러분이 어떤 환경에 있을지 멀리도 생각해 보자"는 것이 그것입니다.

소위 일류대학을 들어가면 당장에야 기분 좋겠지만, 어찌 대학 들어가는 것으로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모든 소원이 성취되겠습니까? 점수 낮은 대학을 가야 해 가슴 쓰릴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멀리 보는 눈을 갖고 꾸준히 한다면 거기에 다음 도약대가 기다리고 있지 않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번 입시 때 다시 전문대에 원서를 냈던 대학 졸업생만도 지역에 1천200명이나 있었다는 뉴스는 기억하고 계십니까?

◈긴 눈 갖고 먼 뜻 가다듬자

제 또래의 어떤 분은 중소도시에서 상고를 나와 지금 어느 금융기관 지점 책임자로 승진해 일 하십니다. 근무 중에도 오랜 세월 독학해 외국어 동시통역사 자격까지 땄습니다. 그러나 대학 못잖게 치열했던 그 때 고교 입시에서 더 나아 보일 수도 있는 .성적.을 거뒀던 제겐 지금 남은 것이 없습니다. 일하고 술마시는 것으로 세월을 보낸 결과이지요.

수험생 여러분. 어느 쪽이 좋겠습니까? 지금 여러분은 달릴 길을 다 달려 그 끝에 도달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정말로 스스로 선택하고 걸음 옮기는 일은 지금부터 시작되리라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걸어야 할 그 길은 길고도 깁니다.

진중한 걸음, 멀리 보는 걸음을 택하시면 어떨까요? 긴 눈을 되찾고 먼 뜻을 가다듬어서, 참가치가 뭔지도 생각해 보면 어떻겠습니까? 흔히 대학 진학이 인생의 큰 갈림길이 되는듯 얘기합디다. 그러나 저는 그것이 인생의 수만가지 일 중 하나 뿐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분에의 지나친 집착은 전체에서의 퇴행이 시작되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자그마하게 살더라도 오순도순, 그리고 남을 도와가며, 사는 것 같이 살겠다고 선택해 보시는 것은 또 어떻겠습니까박종봉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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