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위기가 현실화된 후 농촌에서는 갖가지 이야기들이 잇따르고 있다. 위기를 돌파하려는 시도도 다양하게 이뤄지는 한편에선 불가피하게 닥친 어려움으로 걱정도 늘었다.
◇고품질 볍씨, 고품질 도정법을 찾아라=농민들이 내년에 뿌릴 밥맛 좋은 고품질 볍씨 구하기에 비상이 걸렸다. 고품질로만이 이 상황을 돌파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으나 국립 종자관리소는 수요량의 25%만 공급, 정부 보급가보다 1만, 2만원씩 웃돈을 주더라도 다른 지역으로 가 민간이 가진 고품질 볍씨를 구하려는 것. 구미의 김동우(45)씨는 "정부 수매량 감소로 앞으로는 쌀을 시장에 내야 하지만 질이 낮은 것은 팔기 힘들 수밖에 없어 내년에는 미질 좋은 일품벼를 심으려고 전라도 나주에 볍씨를 수소문해 놓고 있다"고 말했다. 성주의 박진국(38)씨는 "이웃 마을에서 추청벼 종자를 40kg 포대당 정부 보급가보다 1만5천원씩 더 주고 구해놨다"고 했다.
영덕에선 남정농협의 불가사리쌀 작목반이 생산한 '햇님가사리 쌀'이 고품질 쌀로 더욱 기반을 탄탄히 하고 있다. 이 쌀은 최근 친환경 저농약쌀 품질 인증도 받았고 불가사리로 비료를 만드는 방법은 특허 출원까지 돼 있는 상태. 최근 열린 시식회에서 최희찬(35.영덕읍 남석리)씨는 "마치 찹쌀로 지은 밥처럼 윤기 나고 맛도 뛰어나다"고 했다.
중소기업청.경북도청 등으로부터 잇따라 우수업체로 선정된 바 있는 칠곡 왜관공단 '대원산업'은 완전미 가공이 가능한 새 도정기를 개발해 농민들의 수요에 발맞추고 있다. 시중 유통미에는 도정 불순으로 부러지거나 색깔이 변한 것 등이 섞여 있기 일쑤이나, 새 도정기는 완전미만 가려 생산함으로써 RPC(미곡처리장) 것보다 미질을 더 높일 수 있다는 것.
소문이 나자 지난 7월 처음 개발된 이 도정기와 관련한 문의가 쇄도하고, 지난달엔 인도네시아 통칼리 만탄주에 미곡 종합처리설비를 544만7천 달러에 수출하기도 했다. 내년도 수출 목표는 1천만 달러. 서용교 대표는 "완전미 생산만 가능해도 농민들에겐 큰 보탬이 될 것"이라고 했다.
◇보통 쌀은 골칫덩이=매상 못한 나머지 쌀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농민들은 지금 걱정이 태산이다.
봉화 물야면 압동3리 김재왕씨는 "벼를 150여 포대 생산했으나 수매량은 작년의 절반인 20포대밖에 안돼 나머지가 걱정거리"라고 했고, 인근 가평1리 황대현(47)씨는 "1만2천여평에서 400포대 이상을 생산했으나 100포대밖에 매상하지 못했다"고 답답해 했다. 가평2리 박용호씨는 "이곳은 미곡처리장조차 없어 산물벼 매상도 못했는데다 산간지여서 미질이 상대적으로 떨어짐으로써 시중 판매에도 불리하다"고 했다.
수매량이 줄고 외지 상인들이 발길을 끊었는가 하면 정미소들까지 쌀 매입을 중단하자 농촌에선 푼돈조차 마련하기 힘든 농가가 적잖다. 상주의 이창섭(51.낙동면)씨는 60여 가마를 팔려고 임도정 공장에 문의했지만 팔 수가 없었다고 했다.
이런 상황은 영농 의욕을 상실케 해 이농을 부추기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다. 상주에서 올들어 발생한 농촌 빈 집은 총 100여동으로 작년 일년간의 78동보다 더 많다.
하지만 산물벼를 사들여 청결미로 가공해 온 평야지 미곡처리장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곡창 경주에 유일한 처리장인 안강종합처리장은 보관 창고가 부족해 벼를 장기간 야적함으로써 미질이 더 떨어질 우려가 있을 뿐 아니라, 작년부터는 쌀값 계절 진폭이 없어져 연간 3억원 가량의 적자까지 봤다는 것.
◇대책은 제자리 걸음=상당수 지역에서 고향쌀 팔아주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지만 기껏 연고 판매 정도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불안도 커지고 있다. 경주시청은 지금까지 20kg들이 19만2천여 포대를 팔았지만 대부분 역내 유통업체와 연고자가 대상이 됐을 뿐 새 판로 개척은 없었다. 서면사무소가 대구 김밥공장에 8천800포대 판매를 추진 중이나 아직 성사되지 못했고 천북면사무소는 부산 사하농협에 1만 포대를 공급키로 약정만 했을 뿐 가격과 공급시기를 결정하지 못했다. 심지어 홈플러스 경주점은 본점에서 쌀을 일괄 계약, 별도로 경주 쌀을 구매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이다.
이런 가운데 농협들이 속속 중앙회 방침에 따라 자체 수매를 준비하고 있다. 농협중앙회 영양군지부 경우 21일 역내 단위농협 조합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올 벼 수매 관련 회의를 갖고 역내에서 2만7천380가마(40kg)를 자체 수매하되 1등품 가격은 중앙회가 제시한 것보다 2% 많은 가마당 5만2천200원으로 하기로 잠정 결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 수매가 끝난 뒤 다음달 초순쯤 농협 수매가 시작돼도 보관할 창고가 없어 또 문제가 될 전망이다. 농협 영주시지부 경우 정부 수매량(17만3천599포대)보다 다소 적은 11만8천750포대를 시가 수매할 계획이나 농협 창고 여분은 1만5천여 포대에 불과, 민간 창고를 임대하려 백방으로 애쓰고 있다.
사회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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