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합 데스크-겨울의 가치

춥다. 겨우 영하권인데도 이미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다. 서슬퍼런 검찰이 죽을 쑤는 탓도 있지만 예년보다 노숙자가 더 늘어 나고 명태가 내년에는 더 없이 귀해 얼큰한 명태국 한그릇 마음놓고 마시질 못한다는 지레짐작이 우리의 추위를 한층 더 앞당기게 하고 있는 느낌이다.

레임덕 현상이 결국은 명태국 한 그릇과 결코 무관 할 수는 없는데도 절대 그런 일이 없다고 큰 소리가 나온걸 보면 분명 어딘가에서 무엇이 새고 있기는 한가 보다. 아니면 그렇게 변명하면서 애달아 할 이유가 없질 않는가.

이웃과의 흔해 빠진 주차시비 전력이 있는 어떤 젊은이는 바로 그 이웃에 강도로 돌변해 들었다가 참변을 당했다. 휴대폰 없으면 불안하다는 중고생들이 75%에 이르고 수지킴 사건의 배후 인물이 수십년 전 쇼를 하는 장면을 여러번 되풀이 해 보아야 하는 우리들. 그러려면 점차 미망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올 겨울이다.

◈새로운 세기에 대한 불안

여기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우리보다 더 춥고 더 처참한 아프간으로 화제를 돌리기 일쑤다. 아프간 사태가 전쟁인가 아닌가 그런것 보다는 현대의 병기들이 모래바람을 일으키면서 휘황한 불꽃을 피우는 그 장면에서 당신은 당장 어떤 모종의 희열을 느끼지는 않는지.

그리고는 누더기 차림의 그 탈레반이나 북부동맹이나 시민이나 관료나 눈이 퀭한 아이들 할것없이 황무지 같은 그 바닥에서 벗어 나야 한다는데 일말의 동정을 던지고는 무심히 채널을 돌리지는 않았는지. 지금 희열과 동정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우리도 막 겨울을 맞고 있다. 그러니 더 묘한 기분이다. 우리도 곧 의무부대를 파견한다는데 이런것도 실은 개입이다. 개입. 세상에 어디 개입없이 되는 일이 있을라구. 개입을 두고 한 미래학자는 머지않아 지구촌의 의무가 될 것이라고 했다. 지구촌화 되고 개인은 서로 연결된 세상에서 자기 이웃이 난폭해지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고 했다. 더 장기적을 볼 때 한 민족이 몰살당할 위협에 처했는데도 그 나라가 국제적인 도움을 거부한다면 국제기구는 그 의견을 무시할 것이라고 했다. 이런것이 국경없는 민주주의의 싹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명태도 그렇고 수지킴도 그렇고 주차시비를 했던 그 젊은이도 그렇다. 모두가 개입이 낳은 새로운 세기의 지장물 들인 셈이다. 레임덕의 변명도 어쩌면 이런 단면에서 풀이 되어지는 또 다른 개입인 셈이다. 국정에만 전념한다는 것은 이제까지의 행보에 국정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았다고도 해석되어 진다. 그래서 정치권이 저 야단인가 보다.

실은 개입 좋아하기는 우리도 둘째가라면 아마 서러워 할 것이다. 검찰의 개입이 그렇고 국정원의 개입이 그렇고 여당 야당의 정치인들이 그렇다. 그들은 개입없이는 어떤 일도 못하는 사람들 같다. 왜 그렇게 못난 구석에만 개입해 왔을까. 아니 개입해도 되는 일들에 개입해 그 야단들인가. 그들이 무슨 국경없는 민주주의 전사들 흉내 내는 것은 아닐것인데도 말이다.

◈맑고 차가운 그리고 서로를 필요로 하는…

춥다. 이제 겨우 겨울의 시작인데도 마치 겨울의 벼랑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이 가끔 든다. 그만큼 초겨울부터 살벌해지는 이 땅의 온갖 기분좋지 않은 기미들 때문이다. 어떤이는 내년 선거를 겨냥해 느껴지는 기미라 했고 어떤 이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엄포때문이라고 했고 어떤이는 새로운 세기의 가치관이 어떻게 형성될 것인가라는 막연한 불안의 기미 때문이라고 했다.

가치관. 분명 어떤 형태로든 생길 수밖에 없는 가치관. 우리에게는 그것이 무엇일까. 모호성, 자율성, 용기, 다양성, 혼합, 관용, 참됨, 고독, 이타주의, 즐거움 등이 가치의 의미라는 미래학자의 주장과는 달리 지금 당장 겨울의 가치가 진정한 우리들의 가치같다. 맑게 차가운 그러면서 서로를 부비게 하는 그런 겨울의 가치 말이다.

김채한 북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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