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아침 6시 20분. 쪽방 50여 개가 밀집된 대구시 북구 칠성동 꽃시장 인근의 좁은 골목길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아직은 어둠이 안개처럼 서린 골목에서 하나 둘 사람들이 유령처럼 나타났다가 차가 달리는 큰길을 향해 사라진다. 더러는 이미 약속된 일자리가 있는듯 가벼운 걸음도 있지만 대개는 하루를 운에 맡긴 채 무작정 방을 나선 듯 하다. 하릴없이 기다리기만 하다가는 쪽방에서조차 쫓겨나 노숙자로 전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쪽방촌엔 일감을 찾아 큰길로 떠난 사람보다 남은 사람이 더 많다. 아파트 청약률이 치솟고 건축경기가 활기를 되찾고 있다지만 이곳 쪽방 사람들에겐 공사장의 일자리를 구하는 일이 여전히 만만치 않다. '쪽방 사람', 이 단순한 말속에 앵벌이, 무의탁 노인, 전과자, 중증 장애인, 주정꾼, 도둑 같은 불성실하기 짝이 없는 온갖 수식어가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서둘러 골목을 나섰던 이들 중 몇몇은 일감을 찾지 못해 이른 아침부터 휘청휘청 술에 취하기 일쑤다. 또 몇몇은 비좁고 냄새나는 방으로 되돌아와 종일 라디오에 귀 기울이거나 무료 급식 시간이 될 때까지 낮잠을 청한다. 20년 가까이 이 집을 지켜온 주인 여자의 말이다.
오후 2시, 쪽방에 남았던 사람들마저 어딘가 무료 급식소를 찾아 떠난 텅 빈 골목. 비좁은 골목길에서는 하늘마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골목을 타고 질질 흐르는 생활하수, 그 하수가 풍겨내는 눅눅한 습기와 퀴퀴한 오물냄새. 여름이라면 잠시도 견디기 힘들만큼 지독한 냄새였다.
오래 전에 사람들이 모두 떠난, 그래서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피란촌 같은 골목과 낡은 집. 그러나 그 비좁고 위태한 방마다 어김없이 누군가의 남루한 옷가지와 이불이 주검처럼 널브러져 있다. 이불 위의 냄비, 냄비 위의 이불, 방바닥엔 이불과 밥그릇이 어지럽게 뒤섞인 채 뒹군다. 한 사람이 겨우 비껴 지나갈 만큼 좁은 복도엔 빈 술병과 쓰레기가 가득하다.
창문 없는 방문, 뚫린 창틀로 쉴새없이 밀려드는 초겨울 바람, 떨어지다 만 벽지는 덕지덕지 붙어 겨울 논바닥의 폐비닐처럼 흩날린다. 생채기처럼 드러난 벽돌은 사람의 부드러운 살을 노리는 흉기로 변해 있다. 천장이 없어 뼈대가 그대로 드러난 방, 그래서 유난히 천장이 휑한 방, 그 속에 백발의 한 노인이 누워 있다.
노인은 기자가 건네는 한 개피의 담배에 몇차례나 감사를 표시한뒤 연기를 빨아 들였다. 깜빡 잠이 든 바람에 점심도 굶었다는 그는 "종이박스라도 주워 팔아야 한다"며 느린 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깊은 주름, 쇠약한 목소리에 어울리지 않게 그는 이제 54세였다.
상식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쪽방 사람들에게 가지는 기본인식은 '근면성 부재'이다. 걸인과 마찬가지로 쪽방 사람들 역시 자신의 상황을 개선시킬 의지가 도무지 없다며 그들을 질타한다. 확실히 대부분의 쪽방 사람들에게서 '근면의 미덕'을 찾아보기는 힘든 것 같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할 말은 많다. 장씨라고 자신을 소개한 40대의 남자는 자신은 단 한번도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으며, 그자신도 누군가를 존경하거나 사랑한 적이 없다고 잘라말했다. 그는 무섭고 냉정한 세상에 철저하게 주눅들었고 적개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저녁 8시, 이미 취할대로 취한 장씨는 '딱 한 병'이라며 또 한 병의 소주를 요구했다. 감기를 1년 내내 달고 산다는 그는 마치 막무가내로 울음을 터뜨리는 신생아를 닮았다. 그는 쉽게 화를 냈으며 쉽게 웃었다. 그 웃음과 분개엔 어떤 이유나 설명을 붙이기는 힘들었다.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변방의 인생들이 살아가는 쪽방. 이곳 사람들에게 사회로의 완전한 편입은 거의 불가능한 것 처럼 보인다. 무학,무전(無錢),질병,게으름,체질화된 무위도식...어쩌면 우리 사회는 겉으로는 소외지대 사람들을 끌어안아야한다고, 사랑해야 한다고 외치면서도 속으로는 이들과 공존하기를 완강히 거부하는 것은 아닌지...
달랑 1장만 남은 달력, 찬 바람이 을씨년스런 쪽방동네 사람들에게 겨울준비란 사치스런 단어에 불과했다. 그들에겐 그저 이 겨울을 살아내야 겠다고 단단히 마음먹는 것 외에 달리 준비하고 말 것도 없었다. '덜커덕 덜커덕' 바람이 어설프게 매달린 방문을 치는 소리와 함께 쪽방 골목의 밤은 깊어간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쪽방의 정의: 쪽방의 정의는 명확하지 않으며 무허가 판자촌, 산동네, 지하셋방 등과 혼용돼 애매한 부분이 많다. 한국 도시 연구소는 쪽방을 △한사람이 잘 수 있는 작은 방, △방에 화장실이나 부엌이 딸리지 않은 방, △거주자는 불안정하고 이동성이 강한 직업을 가졌으며, △소득이 낮고 가족을 구성한 경험이 적음, △보증금 없는 월세(월 11만-12만원)이거나 일세(4천원-7천원)로 거주하는 경우로 정의한다.
◆대구의 쪽방: 대구의 쪽방은 약 1천여 개로, 거주자는 800-900명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쪽방 거주자들은 이동성이 매우 강해 정확한 통계 자료를 얻기 어렵다. 다른 대도시와 마찬가지로 주로 역, 인력시장, 버스정류장, 사창가 주변 등에 분포돼 있다. 대구지역의 쪽방은 대체로 여인숙, 하숙방 형태이며 수리나 개축 없이 처음 지어진 그대로인 경우가 많다. 난방은 대부분 연탄 보일러에서 기름 보일러로 바뀌었다.
◆쪽방 거주자 일반적 사항: 쪽방 거주자들은 대체로 40-50대의 남성이며, 초등학교 졸업 정도의 학력을 가졌다. 남자가 86%, 여성이 14%를 차지한다. 쪽방 거주자 중 41%는 결혼한 적이 없고 나머지 사람들 중에도 이혼 21%, 사별 15% 등으로 사실상 가족해체 상태에 있다. 직업은 일용직 노동이 56%로 가장 많고 무직 20%, 노점 10%, 폐품수집 7% 순이다. (자료 제공:대구 쪽방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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