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 거대 공룡인 홈플러스, 이마트, 롯데 마그넷 등의 점포 확장 경쟁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이로 인해 지역민들의 소비 규모는 갈수록 커지는 반면 동네 상권이 무너지는 등 지역경제 침몰이 가속화, 이에 대한 대책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대형 유통업체들이 지방에서 치열한 생존경쟁을 펼치면서 동네(골목)에 자리한 소매업체들은 빈사상태에 이르고, 지역 토종 유통업체의 고용능력이 상실되는 등 부작용이 심각해지자 이들의 무차별 점포 확장을 저지하자는 움직임까지 일고 있다.▨ 대형소매점 현황
대구지역 대형소매점(할인점) 역사는 지난 96년 개점한 동아백화점 '델타클럽(회원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음 주자는 97년 회원제로 문을 연 북구 종합유통단지내 '코스트코홀세일(당시는 프라이스클럽)'. 이후 홈플러스, 이마트, 까르푸, 월마트 등이 잇따라 진입, 현재 델타마트와 델타클럽 등 지역 토종업체를 제외하고도 10여개가 상권장악에 혈안이 돼 있다.
홈플러스는 영국 테스코사 자본이 91%선이며, 나머지는 삼성물산 몫이다. 또 까르푸(프랑스)와 월마트(미국)는 외국계이고, 이마트는 서울업체(신세계)여서 대구지역 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대형소매점들은 모조리 남(?)이다.
중.소형 업체까지 포함하면 대구의 유통업체 수는 부지기수. 이미 동네마다 '밀착상권'을 주창하며 중.소형 업체들이 진을 치고 있고 남구 대명동 옛 담배인삼공사 대구지역본부 터와 서구 내당동 황제예식장 부지 등에도 유통업체 건설공사가 한창이다.
대형 유통업체가 이처럼 홍수를 이루는 것은 지역에 밀착해 가격 경쟁력을 갖춘 터줏대감역 유통업체가 없는 데다 지역민들의 높은 소비성향 때문이다.
전국적으로는 후발 주자인 롯데 마그넷이 지난달을 시점으로 진출 3년6개월만에 22개점을 가진 까르푸를 제압, 매장 수 기준으로 2위 자리를 차지했다. 선두격인 이마트는 올 한해동안 15개 매장 신규개점에 이어 내년에도 대구칠성점 등 10개 점포를 확장한다.
신세계 이마트는 2005년까지 전국에 85개 점포망을 구축하며, 롯데 마그넷은 내년에 모두 14개점을 신규오픈해 전국 점포를 38개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까르푸는 내년 전국적으로 9개 매장을 추가 개점하고, 홈플러스는 최근 대구칠곡점과 경주점을 오픈한 데 이어 내년에도 성서점, 상인.월배점 등을 잇따라 개점할 계획이다.
이처럼 대형소매점들이 점포수 늘리기 경쟁에 나선 것은 적어도 점포가 20개는 넘어야 구매단가를 낮출 수 있는 '바잉파워(buying power)'를 확보, 경쟁력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 유통업체 난립이 지역에 미치는 영향
현재 대구의 경우 "유통업체 과잉상태"란 얘기도 있지만 인구 5만명 정도의 소도시가 1, 2개의 대형 유통업체를 끼고 있는 미국 등에 비하면 결코 많은 수는 아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공급이 많을수록 업체간 경쟁이 치열해져 그만큼 가격과 품질에서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면도 없지 않다.
다만 대형 유통업체가 늘어날수록 지역의 중.소 유통업체가 타격을 받고 자금의 역외유출이 심화하는 등 부작용은 떨칠 수 없다.
실제로 한국리서치가 최근 조사, 국회에 제출한 '전국 중.소 상공인 실태조사 보고서'에서는 대구 600개, 경북 493개 점포의 최근 3년간 평균매출액(98년 100% 기준)이 99년 각각 78.6%, 76.9%였고 지난해에는 74.8%, 72.8%로 줄었다.
또 대구 161개, 경북 36개 점포의 최근 1년간 매출액 증감률 조사에서는 대구 32.2%, 경북 42.8%선의 평균 매출감소가 있었고, 특히 경북에서는 평균 70% 이상의 매출감소현상이 나타났다. 이같은 지역점포 매출액 감소에 대해 대구지역 점포의 34.5%가 대형소매점의 인근 출점을 이유로 꼽았다.
이뿐 아니라 점포마다 외지에서 생산된 제품을 대량 구비, 판매에 나섬에 따라 지역에서 각종 '소비재'를 생산하는 업체들은 지역 내수 급감으로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다.
지역에 출점한 대형소매점들이 제각기 단위점포로는 전국 최고 또는 상위권의 매출을 올리며 배를 불려가고 있지만 지역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은 밥그릇을 송두리째 빼앗긴 가운데 대안도 없이 한숨만 쉬고 있는 것이다.
홈플러스 대구점은 지난해까지 전국 단위점포로는 가장 많은 매출을 기록했으며, 칠곡점은 지난 22일 하루동안 1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마트 만촌점 등 신세계 소속 점포들도 전국 상위에 랭크되고 있는 상태.
하지만 이들 업체들의 지역 기여도는 극히 미미하다. 매출중 지역민들로 구성된 파트타임과 아르바이트 사원의 인건비를 제외한 모든 수입이 결국 본사인 외국과 서울 등으로 유출되면서 지역경제는 점차 허약체질로 변해가고 있다.
▨ 진입저지 운동 가시화
대형소매점들의 융단폭격은 기존 재래시장과 도심 권역별 영세점포, 골목상권 등을 크게 위축시킨다는 지적이다. 다국적 기업형의 외국계 유통업이나 서울에 본사를 둔 대형소매점들이 물밀듯이 밀려오면서 지역경제 전반이 크게 위축당하고 있다는 여론이다.
최근에는 일부 지역에서 대형소매점 출점이 제동 걸리기도 해 이제 더 이상 점포확장이 순조롭지 못함을 예고하고 있다.
서울에서는 한 업체가 매장을 신규 개점할 계획이었으나 관할 구청이 인.허가를 해주지 않아 공사를 진행시키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최근 국회 산업자원위원회가 주관한'재래시장 활성화' 공청회에서는 '인구 15만명당 1개로 할인점 수를 제한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대구에서는 전국 처음으로 대형유통업체의 신규진입 저지를 위한 움직임이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가시화되고 있다.
시민운동본부는 앞으로 대형유통업체의 불공정거래 및 과대광고 등에 대한 감시, 대형유통업체 바로 알기 및 이용자제 캠페인, 대형유통업체 신규진입 저지와 함께 동네상점 이용, 대형 유통업체 입점업체들의 피해구제 등을 대대적으로 전개키로 했다.
▨ 지역제품 홀대
대구.경북에 출점한 대형유통업체들이 지역 중.소기업 상품을 적극적으로 구입, 판매하면 지역의 우수 중.소기업 육성은 가능하다. 하지만 이들 업체들은 개점을 준비할 당시엔 하나같이 지역 중소기업 제품을 많이 취급, 지역경제 발전에 기여하겠다고 공언해 놓고는 모른 체 하고 있다.
대부분 점포가 지역업체 생산품은 납품 받지 않고 타 지역 제품을 매입, 지역민들에게 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PB(자체제작 브랜드)상품도 수십여가지에 이르지만 지역산은 극소수다. 품질경쟁은 물론이고 입점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껏 여러 업체가 서울과 지역을 오가며 납품을 시도해봤지만 극히 일부업체를 제외하고는 시간과 경비만 쓰고 뜻을 접어야 했다.
▨ 대응책 마련 절실
업계에서는 할인점 인.허가권을 가진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개입, 지역의 대형소매점들이 가급적 지역산 제품을 취급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허가때 소매점과 지역제품 입점비율 등을 협의형식으로 정하고, 이를 이행치 않을 경우 행정력을 발휘하는 등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민들도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지역제품 납품비율이 낮은 업체에 대해서는 이용을 자제하고 시민단체와 함께 이용자제 캠페인을 벌이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타 시.도의 경우 지역상권 보호와 경제활성화 차원에서 지역상품 의무비율제를 제시하는 등 무언의 압력을 행사하면서까지 지역업체를 측면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대구시는 "제조업체의 마케팅은 기업체 스스로가 해야 할 부분이어서 행정적 지원은 부적절하다"며 지금껏 지역 제품의 대형소매점 입점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마트 만촌점과 홈플러스 대구점은 자체 브랜드제품을 각각 월 3억여원어치씩 팔고 있어 이들 제품만 지역화하더라도 지역경제에 파생되는 효과는 크다.
한 대형소매점 점장은 "대구의 경우 타 도시와 비교할 때 행정기관이 전혀 개입하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행정기관이 인.허가 때 지역제품 입점비율을 제시하는 등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면 대부분 점포가 본사차원에서 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의 중.소유통업체들도 가만히 앉아서 '내 손님' 찾아주길 기다려서는 안된다. 우선 상품을 특화시켜 매장 경쟁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우중충한 매장 분위기를 걷어내고 친절과 믿음을 앞세운 마케팅전략도 펴볼만하다.
또 소비자들은 지역경기 활성화와 지역기업 육성 차원에서 같은 상품에 같은 값이라면 지역산 제품, 지역 유통업체를 이용하는 '지역사랑 운동'을 전개해보는 것이 절실하다.
황재성기자 jsgold@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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