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버리는 용기, 버리는 지혜

12월이 시작된다. 우리는 똑같은 24시간의 날인 줄 뻔히 알면서도 어떤 날에 대해 특별히 의미를 부여한다. 지난 1월의 결심과 다가오는 1월을 설계하는 12월의 첫날은 늘 새로운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새 느낌을 갖고 싶을 때 나는 집 청소를 시작하곤 한다. 제대로 청소를 하지 못하고 살면서도 수도자의 빈방과 같은 공간을 만들고 싶어하는 나는 하기 싫은 청소를 시작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되뇌인다. "이제 아파트 두 평을 벌어 보자"고. 그런데 그 아파트 두 평 벌기의 관건은 버릴 줄 아는 용기와 제대로 버리는 지혜에 있다.

그날도 막 청소를 시작했는데, 베란다에 쌓아 두었던 개수대 밑에 까는 깔판이 생각났다. 초록과 빨간색 앞뒤로 되어 있는 판이 좋아서 한꺼번에 두 개를 샀었다. 그러나, 나는 깔판을 산 뒤에도 여전히 습관처럼 개수대 밑에는 수건을 깔기 때문에 그 깔판은 사용되지 않았다. 풀어보니 먼지가 잔득 덮여 있었다. 나는 방 치우던 것을 놓아두고 그 버릴 깔판을 닦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것을 예쁘게 말아서 끈으로 묶어 아파트 쓰레기 통 옆에 내려다 놓았다. 이 꾸러미는 즉시로 누군가가 가져갔다. 그것이 없어진 자리는 내게 이웃을 느끼게 해주는 또다른 속삭임이었다.

언제인가 북한에 보낼 옷을 모은다고들 했다. 그때 어느 선생님께 그 행사에 참여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면 지금부터 가서 보낼 옷을 모두 찾아서 세탁소에 맡겨 드라이클리닝 하십시오. 그리고 비닐로 포장해서 그 위에 싸이즈를 쓰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들이 어떻게 옷의 스타일을 알며, 어떻게 일일이 입어보겠습니까?" 역시 난 시간이 없어서 그렇게 정성스런 행사에 참여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내게서 어떤 물건을 내 보낼 때 남이 쓸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그 말씀은 늘 지워지지 않게 되었다. 역사를 하는 나는 어려서부터 버리지 않기로 유명했다. 그러던 내게 버리는 물건이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은 위로가 되었다. 두면 언제인가 쓰일지 모르는 물건을 현재 필요한 어느 모르는 이에게 선물처럼 준비하여 내 놓는 것도 새로운 내일을 맞는 지혜가 되리라. 김정숙(영남대 교수.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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