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자와 서양철학자가 주고 받는 대화속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같으면서도 각기 다른 학문의 길을 걸어온 이들에게 동서양의 사유와 사상, 문화, 철학적 개념들의 차이는 어떤 것인가?
'서양과 동양이 127일간 e-mail을 주고받다'(휴머니스트 펴냄)는 두 철학자가 동양과 서양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논(論)하고 쟁(爭)하는 내용을 담아낸 책이다. 대담자는 로마 그레고리안대 철학과 김용석 교수와 고려대 이승환 교수. 지난 여름 몇차례의 e메일을 통해 처음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 두 철학자의 만남은 독자에게 각 사상세계의 여러 갈래들을 섭렵하거나 지적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대화가 시작되면서 다른 영역간의 만남은 반드시 부딪침을 동반하기 마련. 예상대로 동서양 사상과 문명의 핵심개념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주장이 엇갈리기도 하고, 상대의 논리를 반박하기도 한다.
김 교수는 서양사상의 특징을 애지(愛知), 형이상학적 상상력과 과학의 한계, 패러독스로 정리하면서 서양적 사유의 핵심을 드러낸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동양에서도 그런 시각은 있어 왔고, 그것이 꼭 서양의 특징이라고 말하는 것은 서양-보편-진리의 입장에서 본 시각이라며 여러 근거를 대면서 반박한다.
'서양은 보편이고 동양은 부분인가'라는 문제에서도 주장이 엇갈린다. 두 철학자는 왜곡된 서양과 억압된 동양 등 동-서양으로 나누는 이분법이 위험한 분류라는데 공감하지만 여전히 생각의 차이는 드러난다. 두 철학자의 토론은 서구 중심주의와 근대성이라는 테마로 옮겨가면서 오리엔탈리즘과 서구중심주의에 대한 논쟁으로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흘러가기도 한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섞여 있는 혼합의 시대, 논쟁 뒤에 절충과 화해가 뒤따르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대담을 마무리하면서 두 철학자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 나선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개념이 요구되기 때문. 인간의 삶의 조건으로서 지구와 자연, 환경.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과 생활, 욕망과 관계, 그리고 앎과 지식들에 대한 새로운 개념 정의를 통해 변화의 길을 모색한다.
모두 5차례의 만남과 전자우편, 편지를 통한 127일간의 대화. 두 철학자가 현실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독자들에게 화두를 던지며 자신의 사유와 현실의 흐름을 이어주는 이 대담은 서로의 차이를 확인하는 과정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결실은 그리 적지 않다.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기대, 혼합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야말로 이 대담의 수확이다.
서종철기자 kyo425@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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