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과잉수사 不感症

98년10월 포항에 대구지검 포항지청이 들어섰을 때의 기억이다. 문을 열자마자 당장 포항경제계에선 불만이 터져나왔다. "도대체 어느 ×이 포항발전에법원·검찰이 꼭 필요하다 캤느냐"는 볼멘소리였다. 실제로 막 개업한 검찰로서야 "내가 왔다"는 표시(실적)를 내야했고 그 불똥은 당연히 기업들에 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전까지는 검찰이 경주·대구에 뚝떨어져 있어 지각있는(?) 기업가들은 가끔씩 눈도장만 찍으면 홀가분했었는데, 결과적으로 이리될줄 짐작도 못한 국회의원 후보들이 포항유치 공약까지 내걸어 화를 자초한 꼴이 됐다는 것이다.

◈"우리검찰 왜 사랑 못받나"

검찰무용론을 얘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왜 우리 검찰·우리 법원은 백성들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느냐"하는 것을 함께 가슴아파하고 싶어서다. 무엇보다 일반시민의 사회·경제생활 등과 관련된 검찰수사상의 잘못들이 정치파동에 묻혀 축소·간과되고, 결과적으로 억울한 사건들이 국민적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 버리는 이 시류(時流)가 안타까워서다. 검찰총장이 탄핵위기에까지 몰린 작금의 현실을 보면서, 검찰이 진실로 경제적 약자(弱者)·사회적 약자의 편에서 있었더라면 정치라는 태풍앞에서 이렇게 외롭지만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그래서 든다.

지난달 8일 전국의 신문·방송들은 '잘못된 검찰발표 기사화, 국가에 손배책임 언론사는 책임없다'라는 뉴스를 속보없이 1회용으로 보도했다. 바로98년7월에 서울지검이 '대박'이라고 터뜨린 '포르말린 통조림 사건'의 최종기사였다. 번데기·골뱅이 통조림에 방부제 포르말린을 첨가했다는 이유로 업자들을구속, 파문을 일으킨 이 사건은 작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지만 전국 10개의 같은 통조림업체들은 그 와중에 동반도산, 죽은 후에 약주기 ·'상처뿐인 승리'로 돌아오고만 것이다. 그야말로 비과학적·비전문적 검찰수사의 횡포였다.

◈수사 잘못도 면책 "有權無罪"

대법원의 무죄판결 이유는 '자연상태의 식품에서도 생성가능한 포르말린을 일부러 첨가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는 것이었고 검찰은 결국 포르말린 검출사실에만 집착, 무식한 수사를 한 꼴이었다. 부끄럽게도 우리언론들도 피해업체들이 낸 국가배상소송의 승소결과만을 짤막하게 보도하고 끝냄으로써포르말린 논쟁에 대한 추적보도 소홀의 책임을 비켜갔다.'정치검찰'다툼이 끊임없다보니 우리도 그만 '정치적 동물'이 돼버렸다. 전국민의 시선이 권력형 사건에만 쏠려 검찰이나 경찰이 일반시민·경제계를상대로한 사건에서 되풀이하는 수사의 횡포, 전문성 부족과 한건주의가 빚는 과잉·졸속수사의 폐해를 놓쳐버리고 있다. 더구나 이같은 수사잘못에 대한 책임을 검찰조직 내부에서도 제대로 물은 적이 없다는 점은 앞으로도 과잉수사 불감증을 재발시킬 수 있다는데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기실 포르말린 통조림 사건은 89년 '공업용 우지'사건에 이은 '검찰수사 오발탄'의 제2탄이었다. 그때 11월 이 역시 서울지검이 회심의역작인양 발표, 전국민을 충격속에 몰아넣었던 소위 비식용 우지(牛脂)라면 사건은 97년 대법원이 무죄확정 하면서 검찰이 우습게 돼 버린 사건이다.공명심에 불탄 검사들은 그때도 '비식용'이란 문구에 집착했었고, 그 집착은 여러 식품회사들을 망하는 길로 인도했다.

◈"약자의 편"다짐 되살려야

그러나 책임의 문제로 돌아가면 공업용우지사건으로 문책당한 검사는 한명도 없었다. 그때의 부장검사는 지금 사법부의 고위인사로 승진을 거듭해있고 평검사는 지청의 차장검사급까지 올라서 있다. 무권유죄 유권무죄(無權有罪 有權無罪)인가? '포르말린 통조림'검사들도 또 그렇게 승승장구해 갈 것이다.

경실련이 최근 시민 1천명에게 "요즘 검찰이 제구실하는것 같으냐"고 물었더니 71%가 '제노릇 못한다'고 반응했다. 태도나 스타일은 개선됐느냐는 질문에 역시 "달라진게 없다"가 79%. 검찰을 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돌아앉은 여인네 처럼 차갑다는 뜻이다. "약자의 편이 되겠다는사법시험 합격당시의 겸손과 다짐이 어느새 엘리트 조직사회의 방어논리에 젖어 있음을 보고 스스로 놀란다"는 어느 검사의 말씀에서 그래도'희망'을 읽고 싶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