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그래도 우리는 행복했다

어린아이가 문밖에서 울고 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점점 커진다. 그 울음소리가 처음엔 놀랍고 안쓰럽고 금방이라도 달려가야 할 것 같은 책임감이 솟아나기도 하지만 서서히 그 울음소리는 감정을 벗어나 소음으로 서서히 그 소음은 타성적인 잡음으로 아무런 감각이 없어진다.

감각이 떨어지면 그 울음소리는 이유없이 귀찮아지고 신경질적으로 대처하게 되어 언젠가 그 울음소리에 조금쯤은 아파하고 갈등을 가졌던 마음조차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그 아이의 울음이 그치지 않는 한 우리에게는 사회란 존재하지 않는다. 암이나 에이즈보다 무서운 것은 무감각이라 했는가.

우리는 지금 겨울을 살고 있고 냉혹한 정신의 얼음 속에 갇혀 있다. 그러나 믿는다. 얼음 석에 갇혀 있지만 갇혀 있지 않은 역설의 시대적 양심을 나는 믿는다. 먼 곳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듯 어딘가에서 우리들 양심이 몰래 아파하고 있는 것을 믿는다.

완전히 감각이 죽은 것은 아니라고, 바람찬 겨울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고개숙인 모습이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가능한 발걸음을 멀리하려는 사랑의 기만이 자기 표정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들은 바로 괴로워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왜 12월이면 더 아프게 괴로운지 모를 일이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우리들의 양심이다. 노출되거나 표현하려는 본능적 움직임을 또 하나 자신의 본능적 은폐심리로 꼭꼭 안으로 가두고 못 본 척 안 본 척 모르는 척 스쳐 지나가는 우리들의 본심은 말은 하지 않지만 아직도 사실은 괴로운 것이다.

뭐랄까. 무감각 속에 완전 봉쇄 소멸되지 않고 살아 움직이는 생명적 양심이 남아 있다고 보는 한줄기 빛, 그것이 아픔이나 괴로움으로 온다는 것은 그렇다 희망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슴을 펴 보자. 그리고 자신을 들여다보자. 윤동주 시인이 '자화상'에서 연출한 것처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가를 고요히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라는 자아응시의 시작은 괴로운 갈등으로 연결되었다.

우물에 비친 사나이를 미워하고 다시 그리워하고 다시 미워하고 다시 가엾게 보는 미움과 그리움과 불쌍한 것의 갈등구조는 자기를 바라보는 자에게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고통이며 괴로움일 것이다. 그리고 소중한 자기애가 아니겠는가.

이 세상에 자신에게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존재하는가. 자신에게 함몰당하는 나르시스적인 익사 적 황홀감은 순간의 소멸이거나 환상에 불과한 구름한줌 같은 것일 게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괴로움이나 갈등으로 12월의 마지막 달력을 떼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12월의 마지막 달력 앞에서 지금 살아있음의 전율과 은혜로움에 우리들 모든 정신적 기능을 열어야 할 때이다.

살아있다는 것, 이 말의 기묘함에 충격을 느끼며 마치 살아 있음이 나 자신에게만 주어진 비밀스러운 선물 같은 기쁨을 안아들이는 시간 안에서 아직도 그치지 않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는 귀를 깨워야 할 것이다.

인간의 과업은 측은하지만 위대하다. 겨울이 죽음이 아니고 봄을 마련하는 기초작업이듯 우리들의 겨자씨만한 본능적 괴로움과 아픔이 우리들의 푸른 희망을 길어 올리는 두레박이 될 것이다.

미움과 공포 그리고 좌절과 증오가 깊은 강을 건너오며 한해를 보내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행복했다. 두려움 속에서도 감사할 것이 많았다.

'행복했다'라는 완전한 종결의미로 다시 뜨거운 힘을 분출시켜 귀를 열고 가슴을 열어 우는 아이 쪽으로 우리는 걸어가야 할 것이다. 그 울음이 반드시 한국에서만 들리겠는가. 세상한쪽이 죽어가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다. 그것이 함께 사는 사회의 공동체 인류의 이름으로 평화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신달자-시인·명지대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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