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슈&르포-넘쳐나는 중국산 한약재

한약재 시장의 국내 자급기반이 급속히 붕괴되고 있다.국내에서 생산되던 토종 한약재는 70~80여종이나 수입개방으로 중국산이 국내 시장을 잠식하면서 이제 겨우 30여종만이 생산되고 있는 것.

이에 따라 천궁·방풍·당귀·백지 등 토종 한약재 생산기지였던 북부지역 농가들 사이에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생산농가 설 땅이 없다=500여ha에서 연간 8천500여t의 일천궁을 생산, 전국 생산량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영양·청송지역 생산농가들은 근래 수확기를 맞고도 좀처럼 일손을 잡지 못했다. 작년에 600g 근당 7천원을 웃돌던 천궁 값이 최근 1천500∼3천원 정도로 뚝 떨어지면서 생산원가는 물론 인건비조차 건지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이는 중국산의 대량 수입이 몰고 온 결과로, 올해 인천·부산항을 통해 수입된 중국산은 무려 6천여t으로 국내 소비량의 70%를 차지할 정도라고 농민들은 말했다.그때문에 영양 수비면 오기·계리 등 일천궁 주산지에는 벌써 수확됐어야 할 일천궁들이 밭에 방치된 채 비와 서리를 맞아 줄기가 누렇게 말라 들어 있다. 계리 황명영씨는 "지난해 1천500여평에 천궁을 심어 2천여만원의 소득을 올렸지만 가격 폭락으로 올해는 엄청난 손해를 볼 것"이라며, "그래도 밭은 비워야 다른 것이나마 심을 수 있을 참이어서 어쩔 수 없이 거두고 있다"고 했다.

◇식품용으로 둔갑 수입=중국산 천궁은 대부분 '식품용'으로 수입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 들어 와서는 곧바로 국내산 약재로 둔갑, 한약 시장에서 버젓이 불법 유통돼 가격하락을 부추기고 있다고 관계자들은 비판했다.

(사)한국생약협회 박철규 영양군 지회장은 "몇년 전부터 중국산 수입이 크게 늘면서 토종 한약재 생산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며, "작년에는 영양·청송지역 농가들이 서울 경동한약재 시장을 찾아 가 불법유통되는 중국산을 적발, 경찰과 식품의약청에 고발한 적도 있으나 지금까지도 결과 통보조차 없다"고 했다. 당국이 불법 유통물 단속에 손을 놓고 있다는 것.

◇한약재 생산 기반 붕괴 위기=중국산에 의해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천궁뿐 아니다. 패모·지모·목단·방풍·백지·백출·지황·봉령 등 수십종도 경작 기반 붕괴 위기를 맞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100% 자급이 가능했으나 몇년 전부터 중국산에 떠밀려 가격이 폭락, 결국은 생산 기반 붕괴로 이어지고 있는 것.

현재 패모는 아예 국산이 없고 종근(種根)만 있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해졌으며, 시장을 지배하는 중국산 값이 종전의 국산 가격과 맞먹는 수준으로 치솟았다.

당귀·백지·방풍 등 경북 북부지역에서 생산되는 한약재도 수확기를 맞고도 가격 하락으로 판로가 우려되고 있다. 중국산 당귀 수입량이 600여t에 달해 국내 전체 소비량의 50%를 잠식해 버렸기 때문. 강원·전남지역 경우 값이 더 떨어질 것으로 보고 상인들이 발길을 끊자 한약재 농가들이 진작부터 밭을 갈아 엎고 있다고 한약업자들은 전했다.

◇불법 유통 근절이 초미의 과제=(사)한국생약협회 대구·경북 지회 관계자는 "국산 약재는 중국산보다 가격이 비싸도 선호될 정도로 경쟁력이 있었다"며, "식품으로 수입돼 약재로 판매되는 불법유통 근절이 가장 시급하다"고 했다.

영양 수비면 김중현(54)씨는 "중국산 불법유통을 차단하지 못하면 토종 약재의 종근·종자까지 사라져 박물관이나 식물원에서나 구경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값싼 약재를 선호하는 한의사들의 의식 전환, 정부의 다양한 토종 약재 생산·유통 지원책 등이 절실하다고도 했다.

영양·엄재진기자 2000jin@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