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신승남 검찰총장 탄핵안을 놓고 벌인 여야의 표대결은 민주당의 승리로 끝이 났다. 자민련과 민국당 그리고 무소속 의원들이 민주당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원내 과반에서 1석이 모자라는 거야(巨野)의 힘을 과시하며 정국의 주도권을 유지하려던 한나라당의 의도는 교원정년연장안 본회의 통과 무산에 이어 두번째로 좌절됐다. 반면 10.25 재보선 참패 이후 김대중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 그리고 당쇄신을 둘러싼 내분으로 조용한 날이 없었던 민주당은 다소 여유를 갖게 됐다.
또 DJP공조 붕괴 이후 교섭단체 무산,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충청권 공략 등으로 사면초가 상황에 몰렸던 자민련은 캐스팅 보트로서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독자노선의 길을 확보하는 성과를 거뒀다.
한나라당은 교원정년 연장안의 처리 유보에 이어 '이용호.진승현 게이트'에 대한 검찰의 축소.은폐 의혹이 드러난 상황에서도 탄핵안을 관철시키지 못함으로써 '거인'의 한계를 드러내고 이 총재의 지도력도 일정부분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특히 여당의 쇄신기류와 맞물려 비주류 인사들에 의한 당.대권 분리 요구 목소리에도 힘이 들어갈 것으로 보여 조용한 연말연시를 맞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자민련의 반대로 탄핵안이 부결되면 실질적으로 야당이 단독으로 오만하게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는 점을 국민들이 알게 되는 기회가 될 것"이란 긍정적 풀이도 나오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 표만 결속되면 야당 입장을 분명히 보여주는 효과를 거두면서, 탄핵안 가결시 이어질 검찰권 마비나 혼란 등 부작용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피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면 자민련과 김종필 총재는 첨예한 대치정국에서 '캐스팅 보트'를 적절히 행사해 정국의 종속변수만은 아니라는 점을 과시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나라당의 충청지역공략 등에 대한 경고 효과도 십분 거두는 성과도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그동안 불안하게 유지돼온 '한-자 공조'를 파기하고 자제해온 자민련 의원 영입에 적극 나설 가능성도 있다. 역시 야당발 소규모 정계개편의 시발점이 될 소지도 없지 않은 것이다.
민주당으로선 야당측의 교원정년 연장안을 성공적으로 방어해낸 데 이어 두번째 정치적 승리를 거둠으로써 당내에서조차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는 한광옥 대표의 과도체제가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이와 함께 자민련과의 공조 복구론이 당내에서 다시 힘을 얻을 수도 있다.
다만 민주당은 탄핵안 반대 당론을 관철했다는 점에서, 한나라당은 헌법재판소의 최종심판 결과를 낙관할 수 없고 가결에 따른 정치적 부담도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탄핵안 제출 자체로 정치적 의지를 표시했기 때문에 큰 손해는 아닌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박진홍기자 pjh@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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