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중고등학교 시절, 음악시간에 음악하면 현재 서양음계로 된 음악들을 말했다. 창이나 판소리는 배우지도 않았다. 그래서인지 난 오랫동안 창이나 판소리를 들을 줄 몰랐다. 추석이나 명절 때 들려주는 우리가락 프로그램이 내게는 지루했었다.
2년 전, 나는 10여년 만에 내가 공부하던 학교를 다시 찾았다. 그곳의 사람들은 외국인이 모교를 찾아 왔다는 사실에 무척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옛 지도교수는 나를 한국학하는 사람은 다 보았다는 공연에 초대하겠다고 했다. 여러 마리의 말이 음악에 맞추어 춤추는 징가로라는 공연이었다. 이 공연은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유럽 및 미국 등 아메리카 전역을 순회하고, 당시는 마침 파리에 와 있었다. 공연의 인기도 상당해서 이미 20년이나 지속된다고 했다. 공연장에 들어서자 나는 지도교수 가족이 나를 위해 이 공연을 다시 보려고 한 이유를 알았다.
관중석 반대편은 무대였다. 작은 조명으로 노래부르는 사람만 비추는데, 조명 속에는 한 사람이 한복을 얌전히 입고 창을 하고 있었다. 가끔 장구로 장단을 맞추는 남자들도 비추었다. 그리고 모래가 깔린 커다란 스타디움에는, 검은 색과 흰색의 한복을 변형한 의상의 기수들이 나와서 말과 공연을 했다. 기수들은 한없이 늘린 한복 치마로 공연장을 다 덮으며 앉기도 하고, 바람을 일으키며 달리기도 했다.
이 공연은 우리의 고유한 소리인 창과 한복이 제 스스로 자리를 찾아 실력을 뽐내고 있는 현장이었다. 안내문에는 한국의 창을 반주로 공연이 진행된다고 설명되어 있었다. 그리고 창은 매우 호소력 있고 관능을 불러일으키는 음악이라고 평가되었다. 변형 한복을 입은 기수들은 한국인이 아니었지만, 창하는 한국인들은 수없이 바뀌면서 20년 세월을 이었다고 한다.
나는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매력을 찾아서 접목시킨 이 프랑스인 연출자를 생각했다. 한국인 누구와의 연고가 있어서도 아니다. 그는 우리 것의 매력을 나름대로 읽어 그 가치를 실현하고 있었다. 말이 꼬리를 내치면서 달리는 징가로 공연은 세계를 향해 문을 열고 있는 우리문화와 세계문화의 접목에 대한 격렬한 자극이었다. 우리 것의 세계화란 우리 것을 보여주는데 그쳐서는 안된다. 그것은 우리전통의 재창조요, 재해석이 되어야 한다.
김정숙(영남대 교수.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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