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면(冬眠)을 준비하는 나무들이 잎을 다 떨군 가지에 코끝이 쨍한 찬바람이 불어오고, 도심의 모습들이 세모를 향해 달려갈 때면 생각나는 음악가가 바로 비발디(1678~1741)이다. '사계'로 잘 알려진 비발디는 평생 천식을 끼고 살았던 '빨강머리 신부'이자 궁중음악가였다.
이탈리아에서는 보기드문 빨강머리에다가 몹시 허약한 사제였던 비발디가 어느 여성 성악가를 사랑하여 수많은 곡을 바쳤다는 류의 기행(奇行)은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지만 정작 그가 고아와 장애인을 위해서 헌신한 음악가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비발디가 살던 당시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한 수도원은 길에 내버려지는 고아들을 모두다 데려다 키웠다. 수년간 이 수도원과 관계를 맺었던 비발디는 그 수도원 부설 고아원 원생들을 붙들고 악기를 가르쳤다. 한 고아가 쳄발로를 잘 배웠다 싶으면 그 아이를 위한 곡을 지었다. 또 다른 아이가 오르간을 배우면 오르간 협주곡을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수많은 곡들이 세상에 빛을 보게됐다. 바로 비발디의 여러가지 악기를 위한 협주곡 '조화의 영감'(L'esto armonico) 전 12곡이다.
자기를 버린 부모를 원망하는 문제아가 되지 않고 맑은 영혼으로 자라나 17~18세기를 휩쓴 베네치아의 바로크 운동에 이곳 고아원 출신들이 동참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음악의 힘이자, 비발디의 음악봉사 덕분이었다.
국내에서와 마찬가지로 외국에서도 흔히 "예술가들은 사회성이 떨어진다"고 매도되지만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 큰 관심을 쏟은 예술가 가운데 한사람이 바로 비발디인 것이다. 그렇다고 사회적 약자에 사랑을 쏟은 예술가가 비발디 만은 아니다. 대구에서도 송년음악회와 쌍벽을 이룰 정도로 봇물 터지는 자선음악회에서 사회적 약자를 잊지않는 지역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다. 다음주까지 피크를 이룰 자선연주회 가운데는 장애인이나 소년소녀가장을 직접 초청하는 무대도 있고, 공연 수익금을 불우시설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무대도 있다.
어떻든 자선음악회를 여는 음악인들은 공연을 통해서 장애인들을 이해하거나 그들을 더 잘 알게 되는 열린 마음을 갖게 되고, 연말 세모는 한결 훈훈함을 더하게 된다. 영천 나자렛마을, 요한바오로 2세 어린이집 등을 위해 수년째 자선음악회를 열고 있는 대구의 한 여류 피아니스트는 공연 때 장애인들이 이상하게 소리를 지르는게 바로 연주를 좋아한다는 표현이었음을 알게 됐다. 그는 대구 앞산 요한바오로 2세 어린이집의 한 장애인 꼬마가 한반 친구들의 시끄러운 소리에는 울지만, 클래식 음악만 들으면 조용해진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또 대구의 한 대중음악가는 소년원을 들락거리던 문제청소년들에게 사물놀이를 가르쳐서 음악 봉사와 재활의 기반을 닦아주기도 했다.
이처럼 지역 음악인들이 연말에 집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자선음악회는 예술가에 의한 사회봉사라는 의미만이 아니라 특정집단으로만 구성되는 폐쇄적 문화가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사회적 경계선'을 극복하는 의미도 지닌다.
남녀노소, 학력격차, 장애유무 등에 의해서 분류되는 특정집단은 그 집단의 경계선 안에서 나름대로 문화를 형성하며, 다른 경계영역의 문화로부터 스스로 격리되거나, 다른 구성원에게 소외감을 심어주며 갈등의 씨앗을 잉태한다. 이런 경계영역간에 빚어지는 갈등과 긴장을 해소하는데는 상대방 경계영역을 넘나드는 문화적 교류가 상당히 큰 역할을 감당한다.
따라서 이제는 특정집단이 다른 경계영역 너머의 문화를 알고 능동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문화정책에 관심을 쏟아야할 때다. 12월 한달동안 전국 76개 사회복지시설을 찾아서 음악공연 등을 펼칠 문화관광부의 '찾아가는 문화활동'이 일회성 프로그램으로 끝나지 않고 진정으로 다른 사회적 경계선에 머물고 있는 집단을 이해하는 문화활동으로 정착되기를 바란다.
(최미화·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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