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의 배후 조직으로 지목되는 '알 카에다'가 테러 발생 3개월만에 항복을 선언한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깊다. 무엇보다 무고한 5천여명의 시민을 무참하게 죽음으로 몰아넣은 그 반인륜적 범죄 행위에 단호하게 쐐기를 박았다는데 의의가 있겠지만 정치적 의미 또한 중차대한 것으로 이해된다.
▲빈 라덴이 이끄는 알 카에다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와해시키고 아랍권의 주도권을 잡는 것이었다. 만약 알 카에다가 살아남아 세계 최대의 석유산유국인 사우디가 아랍 원리주의자들의 손에 넘어간다면? 세계는 지금보다 훨씬 더 시끄러워질 것이 분명하다. 전문가들은 또 이번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이 실패하면 파키스탄 무샤리프 대통령의 온건적 정치노선이 흔들리고 종국적으로는 핵 무기를 갖고 있는 파키스탄이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에 넘어갈 것으로 보아 내심 여간 속이 탄 게 아니었다. 그래서 알 카에다의 이번 백기 투항은 속내를 따지고 보면 이래저래 여간만 반가운 게 아닌 것이다.
▲9·11테러는 지금까지 인류가 경험한 것과는 판이한 새로운 형태의 전쟁이었다. 영토도 국민도 없는 알 카에다라는 테러 단체가 민간 항공기를 무기화하여 죄없는 민간인을 수천명이나 살상하는 이런 유형의 전쟁은 일찍이 인간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사실 인류는 베스트팔렌조약(1648년) 이래 지난 350년동안 주권국가끼리 전쟁을 하더라도 살상무기를 제한하고 또 민간인 등 공격목표를 제한하는 등 나름대로 이성을 잃지않으려는 노력을 계속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9·11테러는 이 모든 것을 뛰어넘은 것이기에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경악한 것도 무리가 아니란 생각도 든다.
▲아프간 전쟁은 끝났지만 그 전쟁이 미친 파급효과는 쉽사리 사라질 것 같지 않다. 세계는 지금까지의 이념이나 문화적 상이성 등에서 오는 갈등 때문에 대립되는 게 아니라 문명세계와 문명 질서에 대한 도전세력으로 양분되는 '새로운 질서'의 시대가 닥친 것이다. 그러나 일부국가에서는 미국이 이러한 양분법(兩分法)적 시각으로 '내편 아니면 적(敵)'으로 몰아 세계 질서 재편을 시도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으니 전쟁이 끝났다지만 뒷 일이 만만치 않다. 게다가 빈 라덴의 생사조차 분명치 않고 보니 알 카에다의 항복이 반가우면서도 왠지 개운치만은 않은 것 같다.
김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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