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현장파일 이곳-대구소방본부 소방관들

"대명8동 외국인 아파트 뒷골목에 쓰러진 남자가 있다는 전화접수, 구급차 출동바람".

어둠이 짙게 깔린 10일 오후 8시40분. 대구시 북구 칠성2가 대구소방본부 119 종합상황실.

전화 벨 소리가 왕왕 울리고 착신을 알리는 램프가 연신 깜박거렸다. 소란스런 분위기속에 5명의 상황실 당직요원들이 부산하게 일손을 놀리고 있다. 자물쇠가 고장나 안방에 사람이 갇혀있다는 신고에서부터 교통사고차량 인명구조요청까지 5∼10초단위로 전화벨은 젖 보채는 아기처럼 계속 울어댔다.

옆켠 북부소방서 대기실에는 비상출동을 위해 준비중인 소방대원들이 TV를 보거나 휴식을 취하고 있다. 출동명령이 떨어지면 20초내 나서기위해 양말도 벗지 못한채…. 소방관으로 임용된 지 2개월된 신참 나명호 소방사 시보(試補)가 출입문을 들어서는 취재진을 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마치 군기가 잔뜩 든 이등병처럼. 그는 지금까지 화재진압 현장에 15차례 출동했다. TV나 영화 등을 통해서만 보던 대형 화재현장의 불구덩이 속에 처음 뛰어들었을 때 그에게 떠오른 첫 생각은 이랬다. '야, 이거 장난이 아니구나…' 그러나 이제 그는 점차 화마(火魔)와의 싸움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밤 9시32분, 대구시 북구 산격3동 한 주택가에서 전기누전으로 인한 화재신고가 지령실에 접수됐다. 비상출동 명령이 하달되자 대기실의 소방대원들이 눈깜짝할사이 길이 10m 가량되는 나선형 미끄럼틀을 타고 소방차에 올라탔다.

지휘본부차량을 선두로 구급차, 펌프차, 탱크차, 굴절 사다리차가 요란스레 사이렌을 울리며 도로를 질주했다. 소방차 행렬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무단주차 차량들때문에 비좁은 소방도로를 헤치며 현장에 도착한 소방차는 모두 17대. 43명의 소방대원들이 화재현장으로 달려갔다. 불이난 주택가에는 가재도구 타는 냄새가 코를 찌르고 연기도 피어오르고 있었지만 다행히 불은 꺼져 있었다. 소방대원들은 현장의 진화여부를 확인하고 총총히 되돌아섰다. 이들이 저마다 몸에 부착한 장비는 6kg가량의 산소호흡기를 비롯 안전모, 방수복, 장화 등 모두 20kg가량. 그러나 무거운 화재진압 장비만이 이들을 옭아매는 멍에는 아니다. 곧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건물속 불길이라도 생존자가 있다는 사실만 확인되면 무조건 뛰어들어가야 한다. 설혹 자신이 죽을지라도…. 그래서 올해도 많은 소방관들이 꽃다운 젊음을 바쳤다.

재난영화 '타워링'을 보고 멋있는 직업일것 같아 소방관이 됐다는 김호제(43) 진압대장. 그는 지난 1998년 금호강 하류에서 구조작업을 펴다 급류에 휩쓸려 희생된 동료를 잊지 못한다. 물에 빠진 동료 4명중 3명을 자신의 손으로 구해냈지만 마지막 1명은 결국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아 늘 아린 가슴을 안고 산다. 재난현장과 수시로 마주치는 소방관들은 한달에도 수차례씩 생과 사의 기로에 선다. 이때문에 보험회사도 소방관들에겐 고액의 생명보험가입을 꺼려한다. 정부에서는 소방관들에게 매달 위험수당을 지급하지만 생명을 담보로 한 수당이 고작 2만원이다. 소방관들의 애환은 이뿐 만이 아니다. 근무도 24시간 맞교대. 하루 꼬박 뜬눈으로 대기하고 출동하고, 그것도 모자라 비번일엔 소방점검하랴, 소방예방 캠페인하랴 생체리듬이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소방관들은 그래서 실제 나이보다 더 늙어보이는 사람이 많다. 집에서도 가장(家長) 체면이 영 말이 아니다. 과로에 허덕이는 아빠는 어린 자녀들에게 늘 잠만 자는 사람이다. 연일 비상대기다 보니 추석.설날 등 명절도 남의 일이다. 경남 하동이 고향인 이광성(39) 구조대장은 14년째 제사 한번 못드렸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화재현장에서 다시 무전지령이 떨어졌다. 대구시 북구 칠성2가 쪽방동네 골목에 환자가 쓰러져 있다는 행인의 구급신고. 현장에 달려가니 보이질 않았다. 또 다시 구급신고. 허겁지겁 칠성1가 역후 파출소 인근 골목으로 달려가니 머리가 깨져 땅바닥에 피가 흥건히 고인 40대 남자가 쓰러져 있다. 압박붕대로 응급조치를 하는 김명배(40) 소방교. 근무복에 피가 이곳저곳 묻었지만 늘 있는 일인지 대수롭지 않은 표정이다. 인근 곽병원 응급실로 이송조치후 밤 11시가 가까워 다시 소방서로 돌아왔지만 구급차량과 소방차는 이튿날 새벽까지 이런저런 출동을 거듭했다. 그리곤 이들 소방관들은 휘청거리는 아침을 맞았다.

류승완 기자 ryusw@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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