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외국인 투자가에 휘둘리는 기관들

한국증시가 외국인 투자가들 손에 휘둘리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일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 더욱 심해지고 있다. 외국인의 매매 패턴을 보면 그들은 한국증시의 취약성을 속속 꿰뚫고 있는 듯 보인다. 한국 증시의 결정적인 급소 가운데 하나는 기관투자가들이 제 몫을 못한다는 점이다. 외국인들은 선.현물 시장을 넘나들며 기관투자가들을 농단하고있다.

지난 7일 증시에서도 외국인들은 현물을 매도하고 선물을 대량 매수함으로써, 선물 고평가.현물 저평가(콘탱고) 상태를 만들어 기관들의대규모 프로그램 매수를 유발시켰다. 선물과 현물의 차이가 일정 수준 이상 벌어지면 컴퓨터에 의해 주문(프로그램 매매)이 자동적으로 나오게 돼있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하루 전인 6일에 외국인들은 반대로 선물이 현물보다 저평가된 상태(백워데이션)를 조장해 기관들의 프로그램 매도 물량을 이끌어낸 뒤 이를 저가로 받아 가기도 했다. 외국인들의 이같은 전략 때문에 기관들이 자기 의사와 관계없이 주식을 사고 팔 수밖에 없는 프로그램 매매 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국내 현물시장이선물시장의 볼모가 되고 있는 것이다. 선물시장이 헤지(위험회피)라는 본연의 기능을 넘어 외국인들을 포함한 일부 투기세력의 '작전' 도구로 전락했다는 개탄도 터져 나오고 있다.

외국인들이 이처럼 국내 증시를 쥐락펴락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관투자가들은 뒤떨어진 장세 분석 및 예측 능력을 보이며 개인투자자들로부터 신뢰를 잃고 있다. 교보증권 대구서지점 유태곤 대리는 "최근 기관투자가들은 적극적인 매매보다 소극적인 프로그램 매매에 안주하고 있다"고 꼬집었다.기관투자가들로서도 할 말이 없지는 않다. 한 펀드매니저는 "주식형 펀드로 유입되는 돈보다도 빠져 나가는 돈이 많기 때문에 테러 이후 랠리에서 주식을 팔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연말이 다가오면서 국민연금과 상호신용금고와 같은 거액고객들의 환매 요청이 쇄도한 것이기관들의 주식 매도에 주요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0월 이후 투신운용사의 주식혼합형 펀드에서는 2조원 가까운 돈이 빠져 나갔다.

국내 증시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로 기관투자가들의 증시 비중이 너무나 낮다는 점을 꼽는 전문가들이 많다. 거래소시장의 시가 총액비중이 30%에 불과한 기관투자가들로서는 외국인들의 횡포를 저지할 힘이 없다는 것이다.

외국인들은 현재 거래소시장 시가총액의 37%를 보유한데다 특히 지수 등락에 결정적 영향력이 있는 삼성전자.국민은행.포철, SK텔레콤 등 '빅5' 종목의 지분을 60%나 보유하고 있다.

증시 안전판을 만들고 증시가 국부 유출의 창구가 되지 않게 하려면 개인투자자의 증시 직접 참여를 줄이는 대신 기관투자가의 비중을 높여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일본과 미국의 경우 기관투자가의 비중이 각각 55~60%, 70%대에 달해 우리나라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김해용기자 kimh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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