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개혁 마무리론

"잘 살 줄 알았는데…". 그런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러시아 개혁 10주년을 맞이한 오늘의 시민 반응이다.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활짝 꽃피울 수 있을 것이리라던 예측은 전혀 빗나가 버리고 만 것이다. 개혁에 모든 것을 걸었던 국민의 정부 개혁에 대한 평가도 이와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개혁 방향은 옳으나(74.8%) 추진방법에 문제가 있었다(83%)로 보는 여론조사 결과만 봐도 알 수 있다. 의료개혁만 하면약물 오.남용도 줄어들고, 건강보험 재정도 건전해 진다더니 오.남용도 늘고 국민부담도 늘어났다. 교육개혁을 하고 나면 교육의 선진화가 이뤄진다더니 '교실붕괴'니 '교육이민'이니 '이해찬1세대'니 하는 희한한 단어만 생겨났다. 한마디로 교육이 엉망이라는 말이다. 빅딜만 하면 기업은 산다더니 빅딜한 현대전자는 하이닉스로 이름을 바꾸어도 정부가 봐주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천덕꾸러기로 변해 있다. 정치개혁은 손도 못댄 탓인지 전통적인 날치기는 물론 의원 꿔주기, 감표거부 등과 같은 신종 수법까지 등장하고 있다. 악(惡)도 진화하는 모양인가. 정말 "이정권이 손대기만 하면 다 망가진다"는 야당의 악담처럼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슬픈 결과

또한 개혁의 후유증으로 볼 수 있는 사회의 혼란은 개혁의 평가를 더욱 실패 쪽으로 돌려놓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현재의 정부개혁을 '법치주의의 후퇴'라고 규정짓나 하면 어느 지식인 모임에서는 "오늘날 우리사회는 지금 중요한 가치는 무시되고, 중요하지 않은 가치는중시되는 가치체계의 전도(顚倒)현상을 겪고 있다"있다며 그 혼란상을 지적했다.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저질러 진 많은 시행착오, 그에 따른 부작용과 개혁비용이 이렇게 엄청난 것이다. 사실이 이러한데도 여권은 개혁의 미비점은 보완하고 잘못된 점은 고치는 지혜를 모을 생각은 않고 본능적으로 개혁보호만 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의식했던지 최근 김대중 대통령은 광주에서 "과욕을 부리지 않고 지금까지 한 일을 마무리해 나가겠다"라는 개혁 마무리론을 피력했다. 조금은 늦은 감이 있지만 바람직한 전환이라 하겠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준비 없이 금융실명제를 실시했다가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1주일동안 6번이나 고쳤었다. 아무리 준비된 대통령이라 해도 예측이 잘못될 수도 있고 시행착오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바꾸기만 하면 무조건 개혁이고, "개혁 앞으로"했을 때 따라오면 무조건 개혁세력이고,"그 길이 아닌데…"라고 이의를 제기하면 무조건 반 개혁세력으로 모는 개혁 독점적, 개혁독선적 2분법적 행태는 이제 지양되어야 한다. 햇볕정책의 속도조절을 말하면 '그럼 전쟁하잔말이냐'며 몰아붙여서도 안되고 정년문제에서 62세는 개혁이고 63세는 반개혁으로 논리를 비약시켜서도 안된다. 개혁의 수준문제가 아닌가.그렇게 해서는 토론이 있을 수 없고 토론이 없이는 다양한 지혜를 모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는 '함께 하는 개혁' '열린 개혁'도 할 수없는 것 아닌가.

개혁 경쟁

사실 김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말했듯이 개혁 없이는 우리는 살아남을 수 없는 절체절명의 과제이다. 그렇다고 개혁이 무슨 하늘아래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 20세기 들어와 성공한 개혁으로 평가받는 미국의 레이거노믹스, 영국의 대처리즘, 뉴질랜드의 로저노믹스도 모두 '작은 정부 큰 시장'이라는 이미 있었던 이론을 재현했을 뿐이다. 선택이 옳았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치개혁이 그렇게 안된다고 비판을 했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당 총재직을 내놓으니 이제 여.야가 서로 정치개혁 경쟁에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결과는아직 더 두고 봐야 알겠지만-. 개혁은 이렇게 작은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어떻든 좀 더 일찍 하였으면 더 좋은 결과는 낳을 수도 있었지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 대목이다.

결국 개혁은 로저노믹스의 로저장관이 개혁성공의 10대 원칙 중에 있는 것 같다. 그 중 하나가 "국민을 과소평가하지 말라"였다. 국민은 벼인지 피인지를 구분할 줄 알므로, 사탕발림으로 넘어가려는 수작일랑 아예 말라는 것이었다.

서상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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