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들은 '안분(安分)'과 '시중(時中)'을 처신의 지표로 삼았다. '안분'은 편안한 모습으로 제자리를 지키라는 뜻이며, 자만심에 빠져 분수에 넘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경고의 뜻도 담고 있다. '시중'은 '시의(時宜)'와 같은 뜻으로 '시기에 적합하도록 처신하라'는 의미를 거느린다. 즉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남에게 잊혀지는 것을 두려워 하는 인간의 속성 때문에 여간해선 실행하기 어려우므로 두고두고 강조해온 덕목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시중'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러나야 할 시기를 스스로 가리는 일은 범인(凡人)의 영역을 넘어선다는 말도 있다. 막상 자신이 물러나야 할 지경에 이르면 '이직도 내겐 할 일이 많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기 일쑤다. 직위가 높을수록 자리에 대한 미련은 더욱 강하다고 한다. 하지만 연연하다 시기를 놓쳐 냉패를 보거나 봉변을 당하는 경우를 동서고금을 통해 무수히 보아오지 않았던가.
▲프랑스의 세계적인 영화배우 알랭 들롱이 영화계를 떠난다고 한다. 13일 기자회견을 통해 그는 '이제는 더 이상 영화에 출연하고 싶지 않다'고 은퇴를 공식 선언했다. 1957년 영화 '여자가 관계될 때'로 데뷔, 빼어난 외모와 강렬한 눈빛 등으로 20세기 미남의 전형이라 칭송되면서 스크린을 누벼 특히 여성 팬들의 열광적인 사랑을 받았던 그는 '결코 구속이나 압박을 받은 받는 상태에서 영화를 만들지 않았고, 살아 남기 위해 영화를 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1960년 영화 '태양은 가득히'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그는 지금까지 85편의 영화 중 82편에서 주연을 맡았고, 24편을 직접 제작했으며, 감독한 영화도 2편이다. 기성 사회에 도전하는 청년상에서 차가운 갱, 우수에 젖은 고독한 형사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연기를 펼쳤던 그는 '영화의 예술성과 상업성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프랑스 영화의 신화'로 칭송되기도 했다. 그에게는 영화가 바로 삶 자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뭇 여성들이 선망하는 미남 배우로 수많은 여자들과 염문을 뿌리기도 했던 그는 이번 기자회견에서 '내가 원하는 때,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모든 것을 함께 했다'고 했다. 언젠가 '세상 어느 남자도 경험하기 힘든 환상적인 생활을 했고,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었다'고 고백한 바도 있다. 그는 이제 그 화려했던 신화의 뒤편으로 숨어들게 되지만 우리를 다시 한번 부럽게 하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또다시 범인의 영역을 넘어서는 그의 '아름다운 퇴장' 때문이리라.
이태수 논설위원
댓글 많은 뉴스
尹 탄핵심판 선고 앞 폭동 예고글 확산…이재명 "반드시 대가 치를 것"
노태악 선관위원장 "자녀 특혜 채용 통렬히 반성" 대국민 사과
[단독] '애국가 부른게 죄?' 이철우 지사,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돼
[시대의 창-김노주] 소크라테스의 변론
선관위 사무총장 "채용 비리와 부정 선거는 연관 없어…부실 관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