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하는 오후

얼음장 위에 모닥불을 피워도녹지 않는 겨울 강

밤이면 어둔 하늘에

몇 발의 총성이 울리고

강 건너 마을에서 개 짖는 소리 멀리 들려왔다

우리 독립군은

이런 밤에

국경을 넘는다 했다

때로 가슴을 가르는

섬뜩한 파괴음은

긴장을 못 이긴 강심 갈라지는 소리

이런 밤에

나운규는 '아리랑'을 썼고

털모자 눌러 쓴 독립군은

수많은 일본군과 싸웠다

지금 두만강엔

옛 아이들 노는 소리 남아있을까

강 건너 개 짖는 소리 아직 남아 있을까

통일이 오면

할 일도 많지만

두만강을 찾아 한번 목놓아 울고 나서

흰머리 날리며

씽씽 썰매를 타련다

어린 시절에 타던

신나는 썰매를 한번 타보련다

-김규동 '두만강'

두만강변의 함북 경성 출신 시인의 시이다(1923년생). 어릴 때 놀던 두만강변의 풍경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니까 이 시인에게는 유년시절을 회고하는 사향(思鄕)이 통일의지로 연결되는 셈이다.

통일이 오면 할 일도 많지만 두만강 찾아 한 번 목놓아 울고나서, 흰머리 날리며 씽씽 썰매를 타고 싶다는 시인의 염원은 시적으로는 무기교의 직설화법이다. 그러나 번다한 분식의 수사보다 큰 감동이 되는 것은 바로 이 진술이 갖는 진실의 힘 때문이다.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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