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해광칼럼-3知 운동을 하자

9·11테러가 발생했을때 뉴스위크지는 '역사의 종언'이라는 책을 쓴 프란시스 후쿠야마 교수의 말처럼 드디어 미국 주도의 세계역사가 '종언'을 고했다고 선언했다. 지난 12일 부시 미국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승리를 묵시적으로 선포함으로써 다시 팍스 아메리카나적 역사의 종언을 확인한 셈이다. 하루뒤인 13일엔 1972년에 맺은 탄도탄요격미사일(ABM) 체결협정에서 탈퇴한다고 러시아에 통보했다. 이것은 대 아프가니스탄전에서 승리에 자신감을 회복한 미국이 다시 국제질서의 주도권 장악을 세계에 선포한 미국 일방주의의 회복을 의미한다. 이것이 국제정치의 단적인 현황이다.

그런데 국내 정치의 현실은 어떠한가. DJ정권의 사정을 총괄하는 민정수석비서관이었던 현직법무차관이 수뢰혐의로 옷을 벗었고, 국세청장이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는 것은 좋았지만 장관된지 수일만에 감투를 벗었으며, 그 서슬퍼렇던 경찰청장이 옷벗은지 한달여만에 구속되는 수모를 당하고 검찰총장을 탄핵하는 소동을 벌였으니 이른바 4대 핵심권력기관의 책임자들이 줄줄이 부정부패와 커넥션을 맺은 듯이 매도되는 것이 현재의 국내정치기상도로 그려져있다.

말하자면 국제정치는 미국이 잠시 주춤하더니 다시 제 페이스를 찾아 나가는데, 우리 국내정치는 이전투구식 비리와 부패로 발목잡혀 한걸음도 진보하지 못하고 있다.

왜 이런가? 한마디로 논리적 이성과 상식(common sense)이 실종됐기 때문이다. 인간은 크게 두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한가지 유형은 이익과 욕심의 노예인 현상인, 또 한가지 유형은 자유와 이성의 주인인 예지인이라 하겠다. 즉 이성과 상식을 잃어버린채 오직 이익과 욕망의 노예가 되어 현상에 매몰된, 맞보기식 인간들만 득실거릴 뿐, 참으로 순수이성과 실천이성을 겸비한 자유의 주인이 이땅의 지도자로 민초들을 향도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누가 이 땅에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으랴.

나는 감히 '3知 운동'을 전개할 것을 제안한다. 첫째로 '지분(知分)' 운동이다. 분수를 알고, 처신해야한다. 개인소득 1만달러도 안되면서 서구 선진국 국민처럼 행동한다면 빚쟁이 신세는 불을 보듯 뻔하지 않은가. 지금 우리는 1천억달러 이상의 외환을 보유하고 있다지만 단돈 195억달러 때문에 IMF에게 경제주권을 빼앗겼던 우리가 아닌가. 그럼에도 가계부채비율이 작년 대비 25.9% 증가하여 가구당 2천2백만원의 빚을 지고 있다니 도대체 분수를 아는가 모르는가. 둘째 '지치'(知恥) 운동이다. 어제의 경찰총수가, 어제의 사정총괄자가, 어제의 조세최고책임자가 세금포탈로 수뢰로 비리은폐로 평생의 명예를 검은 잉크로 도색하는 나라가 있을 수 있는가. 공자는 막현호은(莫見乎隱)과 막현호미(莫見乎微)라 했다. 아무리 숨겨도 보이기 마련이요, 아무리 작아도 드러날 수 밖에 없으니 모름지기 홀로 있음에 근신하는 자가 군자라 했다. 정말로 이땅에 군자는 존재하지 않는단 말인가. 셋째 '지족'(知足) 운동이다. 안빈락도(安貧樂道)로 우리 삶의 방식을 바꿔야한다. 현직 모 의원은 얼마전까지 18평 연탄방에 4식구가 살았으며, 후원회에서 나온 돈을 모두 돌려준 사건이 최근의 일이란 걸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이런 정치가야말로 진정 우리가 바라는 참 지도자상이다. 수천 수억의 검은 돈을 삼키고도 충혈된 눈으로 헤매는 천박한 정상배들 사이에 하나의 빛나는 효성같은 인물이며, 지족의 사표로서 희망을 주는 지도자가 아닌가.

대구 종로의 화교학교 운동장에는 "용기와 절개를 중히 여기고 생사를 가릴줄 알고, 책임질줄 알며 염치를 알라"는 교훈이 비석에 새겨져있다. 도덕적이고, 창조적인 민주시민이란 알 듯 모를 듯한 추상적 글귀가 우리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현실과 너무 대조적이란게 나만의 생각일까. (계명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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