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보시오 벗님네들 이내소리 들어보소(51)

농한기가 되면 크고 작은 토목공사를 한다. 못둑을 쌓거나 제방을 하고 다리도 놓는다. 이런 공사의 기초를 위해 망깨라고 하는 쇠뭉치로 말뚝을 박는다. 무거운 망깨를 높이 들어올려 말뚝 박는 일을 여럿이서 하면서 망깨소리를 부른다. 서까래와 같은 장대로 삼각대를 설치하고 도르래를 달아서 망깨에 연결된 줄을 당겨 망깨를 높이 들어올린다. 충분히 들어올렸을 때 일시에 줄을 늦추면 망깨가 아래로 떨어지면서 말뚝을 세차게 때려 박는다. 앞소리꾼이 망깨 위에 높이 올라서서 "줄 많이 땡기면…"하고 앞소리를 메기면 뒷소리꾼들이 망깨줄을 일시에 잡아당겼다가, '어여라 차아' 하고 놓으면서 말뚝을 박는다. 선거를 앞두고 하는 정치적 토목공사는 정당개혁이다. 내년의 대선을 앞두고 정당마다 토목공사가 한창이다. 토목공사용 망깨소리를 들어보자.

어여라 차아

줄 많이 땡기면 돈 많이 준다

천근 망깨는 공중에 놀고

열두 자 말목은 용왕국 드가네

질 가는 저 양반아

딸이나 있거든 날 사위 보소

딸이사야 있다마는

노가다에는 딸 안치워요

안동 조상칠 할아버지의 망깨소리이다. 망깨소리에서 가장 상투적인 내용이 '줄 많이 당기면 돈을 많이 준다'는 대목과, '천근 망깨는 공중에 놀고 열두 자 말목은 용왕국 들어간다'는 대목이다. 두레나 품앗이로 하는 농사일과 달리, 토목공사는 공적인 일이므로 일당을 쳐서 품삯을 받는다. 따라서 줄을 많이 당기면 돈을 많이 준다며 일을 격려한다. 망깨가 공중에 올라가는 것과 비례하여 말목은 땅속으로 쑥쑥 들어간다. 공중으로 올라가는 망깨와 땅속으로 들어가는 말목이 천상과 지하, 천국과 용왕국으로 음양의 대조를 이룬다. 망깨틀 위에서 앞소리를 메기는 남정네와, 땅에서 줄을 당기며 뒷소리를 받는 아낙네들 또한 음양의 조화를 이룬다.

'길 가는 사람에게 딸이나 있거든 사위를 보라'고 하는 대목도 망깨소리마다 나온다. 그러면 말대답은 두 가지이다. 공사판의 일꾼에게는 딸을 치우지 않는다며 사위의 자질을 흠잡는 경우와, 딸이 아직 어려서 사위볼 때가 안되었다고 딸의 자질을 흠잡는 경우가 있다. 뒤와 같이 딸이 어리다고 하면 으레 "뱁새가 작아도 알을 놓고/ 제비가 작아도 강남을 가네"와 같이 반론을 편다. 어른들이 일방적으로 혼인을 결정하던 시절에도 일노래 속에서는 구혼의 자유를 누렸던 셈이다.

여보시오 줄 땡긴 농부네

저ㅌ에 보기도 좋그러

먼데 사람이 듣기도 좋그러

확 엎어져서 확 자빠지면서

일심 받아서 줄을 땡기소

안동 조차기 할아버지 소리이다. 일노래의 앞소리는 으레 일의 능률을 올리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게 일을 지시하는 구실을 하는데, 지시하는 방식이 두 가지이다. '곁에 사람 보기 좋게/ 먼데 사람 듣기 좋게'라는 대목은 어느 일노래든 한결같은 상투적 지시이다. 곁에 사람이 보기 좋게 일을 하려면 일을 시원스레 해야 한다. 일이 하기 싫어서 마지못해 억지로 하는 것이 보기 좋을 까닭이 없다. 잠깐을 하더라도 일을 하는 것처럼 씩씩하게 하라는 말이다. 그러나 '먼데 사람 듣기 좋게'하려면 노래를 구성지게 큰 소리로 목청껏 불러야 한다. 그러면 자연히 일의 신명이 오르게 마련이다.

이와 달리 구체적인 지시는, 확 엎어졌다가 확 자빠지면서 일심으로 줄을 힘껏 잡아당기라는 것이다. 상당히 화끈한 요구이다. 그러나 망깨는 천근들이 쇠뭉치처럼 무거운 까닭에 확 자빠지면서 일시에 공중으로 들어올릴 수 없다. 따라서 줄을 잡아당길 때는 뒷걸음질을 하면서 슬슬 잡아당기고 줄을 놓을 때는 일시에 놓아서 말뚝에 큰 충격을 주도록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과 다르게 확 잡아당기라고 하는 것은 일꾼들의 신명을 돋우기 위한 것일 따름이다.

우리의 망깨 소리에

먼데 사람은 굿을 보고

저ㅌ에 사람은 춤이 나온다

감독이 오거덜랑

버떡 버떡 들어놓고

우리꺼정 할 땔랑

소리만 맞차 질러주소

거창 사는 이우전 할아버지 소리이다. 먼데 사람은 굿을 본다고 했는데, 이때 굿은 곧 구경거리를 말한다. 옛날에 굿은 곧 훌륭한 구경거리였기 때문에 남에게 구경거리가 되는 것을 두고 흔히 '굿 뵌다'고 하였다. 줄을 당겨서 망깨를 높이 들어올렸다가 말뚝을 때려 박는 공사장 풍경은 먼 데서도 굿구경이나 다름없는 구경거리였다. 공사판 곁에 있는 사람은 소리에 신명이 나서 어깨춤이 절로 나온다. 공사판이 굿판이자 춤판이라면 사실상 놀이판이나 다름없다. 일노래를 부르며 일을 하면 공사장도 흥겨운 놀이판으로 변모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공사장 감독이 없으면 이렇게 신명을 내서 일할 까닭도 없다. 감독이 오면 망깨를 빨리빨리 들었다가 놓지만, 우리끼리 할 때는 소리만 맞추어 지르면서 일하는 시늉만 하자는 것이다. 감독을 의식하며 일을 꾀대로 하고자 하는 배려가 앞소리 사설에 갈무리되어 있다.

십장은 죽어서 구렝이가 되고

우리는 죽어서 개고래기가 되지

저 놈의 가스나 속눈을 보소

겉눈을 감고서 속눈만 떴네

정읍 사는 김창기 할아버지 소리이다. 토목공사의 감독을 흔히 십장(什長)이라고 한다. 주로 현장에서 일꾼들을 직접 관리하고 감독하는 사람이다. 공사장 막일꾼들은 사실상 십장 밑에서 꼼짝을 못한다. 고양이 앞의 쥐이자 뱀 앞의 개구리나 다름없다. 따라서 십장은 죽어서 구렁이가 되고 일꾼들은 죽어서 개구리가 된다고 하는 것이다.

저놈의 가시내 속눈을 보란다. 눈을 내리깔고 눈알만 살짝 치떠서 바라보는 상황을 일컫는다. 눈꺼풀을 내리깔았으니 겉눈은 감은 셈인데, 정작 속눈은 보고자 하는 쪽으로 치뜨고 있는 셈이다. 내외법이 강고하던 시절, 그리고 시집살이가 가혹하던 시절에는 이처럼 여성들의 눈은 겉눈과 속눈이 따로 놀았다. 그런데 거꾸로 속눈은 감고 겉눈만 뜨고 있는 사람도 있다.

힘없는 사람들은 속눈만 굴리게 마련인데 권력자들은 반대로 속눈은 감은 채 겉눈만 뜨고 있다. 대통령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겉으로 강조하지만 속셈은 검찰총수부터 자기 인물을 앉혀두고 권력안보에 힘쓴다. 공권력의 상징인 검찰과 국정원도 겉으로는 법질서를 구현하고 국가기강을 세운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고위직부터 정권의 시녀구실을 하고 비리에 연루되어 끊임없는 재수사와 특검제가 요구되는 처지에 이르렀다. 고위층일수록 겉눈만 짐짓 부릅뜨고 속눈은 감은 채 부정과 비리를 눈감아 준 까닭이다.

여당은 지금 민주적인 정당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총재직을 없애고 집단지도 체제로 가는가 하면 상향식 공천으로 당내 민주화를 계획하고 있다. 여당의 개혁과정을 지켜보던 야당 총재도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되면 총재직을 없애겠다'고 했다. 정치개혁의 희망이 보이는 듯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대통령과 총재직 분리가 아니라 실제로 당 운영을 민주적으로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제왕적 대통령은 당총재를 제 멋대로 좌우하기 때문에 사실상 분리해 봤자 별로다. 역대 대통령처럼 겉눈만 뜬 채 속눈을 감고 있다면 국정원 이름을 바꾸고 검찰총장 임기제 시행도 별 의미가 없다. 겉눈을 아무리 부릅떠도 속눈을 감고 있으면 지금처럼 권력형비리는 계속 터지게 마련이다. 속눈을 부릅뜨고 정치개혁의 토목공사를 더 철저하게 실천해야 한다. 그러자면 당총재와 대선후보 분리인들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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