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데스크-불없는 화로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났다.…중략…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기른다.…후략…정부가 1968년 12월 5일에 제정, 선포한 '국민교육헌장'의 한 구절이다.

중.장년층이라면 학창시절에 달달 외어 읊조린 기억이 새로워지는 우리 교육의 주춧돌과 대들보를 멋지게 아우르는 '지당한 아젠다'였다.그러나 30여년후 지금의 현실은 어떤가.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힌 20대 청년(대졸자)들이 갈곳이 없다고 한다. 심각한 청년실업. 이게 어디 보통의 문제인가. 통계청이 발표한 청년실업률 7.1%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1997년말 IMF 외환위기 이후 늘어나기 시작한 20대 실업자가 올해엔 더욱 급증, 당사자는 물론 그들의 부모들마저 숨이 꽉 막히게 하고 있다.흔히 대학을 상아탑(象牙塔)이라 부른다. 30~40여년 전 상아탑을 우골탑(牛骨塔)으로 빗댄 적이 있었다.

◈일거리 없는 대한민국

자식들의 등록금.하숙비.생활비 등을 뒷바라지 해야 할 부모들이 당시 농촌의 큰 재산이었던 소를 팔아 조달해야 했던 상황을 이른 말이다.부모들은 전답과 소를 팔아 자식을 대학보내면 졸업후 어엿한 사회인으로 진출, 제역할을 다할 것으로 믿었다. 사실 그랬었다. 웬만하면 공직이나 회사에 취직, 부모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아 자식키운 보람을 안겨 줬었다.격세지감…. 세월이 약(藥)이 아니라 독(毒)으로 다가선 것이다. IMF체제 이후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잃은 일부 50대 가장(家長)은 부자가 모두 실직자로 전락하는 비극적인 상황을 맞기도 했다. 해마다 대학과 고교에서 쏟아져 나오는 60만~70만명의 취업희망자들이 일자리를 찾고 있지만 그들이 설 자리는 한정돼 있어 3분의 2가량은 곧장 실직자 신세를 면하기 어려운 상황속에청년 취업난이 앞으로 7~10년간은 계속될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고질화되다시피한 청년들의 실업은 사회적으로 많은 부작용을 잉태하고, 일부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취업전선에 뛰어들려다가 수많은 고배를 마신 대졸자가 주위의 눈총과 자격지심에서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자살했다는 뉴스, 이력서를 100번이나 넘게 냈으나 허탕쳤다는 취업준비생들의 쓴 웃음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오죽 답답했으면 한국을 떠나고 싶다고 마음 먹고 있을까.

최근 취업정보 제공 사이트 잡코리아가 대졸 구직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남성 응답자 90%가 외국이라도 취업이 되면 나가겠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근본적 실업대책 마련해야

'일자리 없는 대한민국'에 신뢰와 희망을 버리고 있는 이들의 '정신적 공황'을 달랠 뾰족한 처방이 너무나 아쉽다.청년들의 실업은 2002학년도 대학신입생 지원에서도 취업에 유리한 교육대.사범대와 의예과.한의학과 등의 경쟁률을 끌어올려 만성화된 취업난이 대입의 경쟁판도를 바꿔 놓기도 했다.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한' 인재들이 적성을 접고 우선 '일자리를 얻고 보자'는 식의 안타까운 현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엊그제 발표한 정부의 청년실업대책인 인턴사원제도와 중소기업현장체험활동(중활) 등은 일부 기존 정책의 재탕인데다 일시적으로, 체감적으로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평가를 받을 줄 모르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기업들도 경기침체에 따른 경영난으로 인건비 등 원가절감에만 집착, 신규채용을 줄이지 말고 '회사중흥=인재등용'이라는 점을 새삼 음미해 '떠돌이 별' 같은 엘리트들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해주면 좋겠다.이 겨울, 아니 온기가 돌 새봄에는 청년 구직희망자들이 '불없는 화로, 딸없는 사위' 신세는 면하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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