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싸움하는 정치인을 옹호한다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여인천하'에서 주인공들인 문정황후와 경빈, 그리고 조정의 대신들은 권력싸움의 과정에서 '살아 남아야한다'고 절규한다. 권력 암투 속에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 남아 언젠가는 권력을 차지할 꿈을 꾼다. 이들에게는 권력을 차지해야 한다는 욕망만이 가득하고, 그들이 살아 남아야하는 이유로 오로지 권력 그 자체를 잡기 위해서이다. 조선조가 유학에 바탕을 둔 시대이지만 이 드라마에서 백성을 위한다는 위민(爲民)의 명분이나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유교 철학은 어디에도 찾아볼 길 없다. 선과 악의 구도조차 없이 모두가 진흙탕에 빠져 허덕이면서 술수와 음모만 난무한다.올해 국민에게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준 사람은 정치인이라는 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국민들이 정치인을 혐오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치가들이 민생 문제는 뒷전에 둔 채 매일 싸움만 한다는 데 있다. 드라마의 주인공들뿐만 아니라 지금의 정치인들도 대통령 후보가 되기 위해 서로 다투며 국회에서는 욕설과 육탄전이 벌어지는가하면 정당의 대변인들도 매일 텔레비젼 뉴스에 등장해서 상대 당을 원색적으로 비방한다. 아이들끼리 싸워도 이를 말려야하는 것이 어른들이 할 일인데 그런 어른들이 대표로 뽑아준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이전투구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정말 한심스럽다고 개탄한다.

그러나 정치는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기반으로 하며 정치인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사람이다. 정치인이 싸우는 것은 당연하고 싸우지 않는 정치인은 자신의 임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싸운다고 비판하는 것은 부당하다. 조용한 것은 독재체제에서나 있는 일이고, 하나의 사안을 두고 치열한 토론을 벌이고, 한 직위를 차지하기 위해서 서로 경쟁하고 싸우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하다. 문제는 첫째, 정치인들이 무엇을 위해서 싸우는가에 있다. 정치인은 당연히 국민을 위한 국가 정책을 두고 논란을 해야한다. 어떤 정책을 채택하고 시행하는 데에는 상대적으로 좋은 점과 좋지 않은 점, 이익을 보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으로 나뉘게 마련이다. 누구의 입장을 지지하고 어떤 점을 강조할 것인가 하는 데에 있어서정책적인 이견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이는 정치 철학의 차이에서부터 비롯될 수도 있고, 대변하고 있는 계층의 이해에 따른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국가의 앞날을 전망하고 국민을 위해서 무엇이 최선인가를 논하는 싸움이 되어야함은 자명하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정치 싸움이 당의 이해 관계에만 밀착해 있거나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영합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둘째로는 정치인들이 싸우는데 있어서 규칙이 정당한가 또 그 규칙을 지키는가하는 문제이다. 여당은 당 내부적으로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내고 실험하려고 하고 야당 내부에서도변화의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그러나 여야관계에서는 여야는 서로 폭로전에 몰두하고 있고 음모론이 만연하고 있다. 여야는 국민의 지지를 얻으려 하기보다는 상대방이 지지를 잃도록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러한 부정의 정치를 보면서 국민은 짜증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내년에는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가 있다. 또한 월드컵 경기와 아세안게임 등 주요한 두 국제경기가 우리나라에서 열린다. 체육 경기에서는 규칙이 있고 규칙에 어긋날 때에는가차없이 노란 카드를 받거나 빨간 카드를 받아 퇴장당하는 등 벌칙이 엄격하게 적용되고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그 결과에 승복하고 경기를 즐긴다. 정치가 공정한 규칙을만들어내지 못하거나 정치인들이 만들어 놓은 규칙을 잘 지키지 않는다면 국민은 정치인을 더욱 혐오하고 선거를 외면하게 된다. 싸움이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싸우는 정치인을 통해 우리의 희망과 미래를 걸어야한다. 다행인 것은 매스컴에서 매도당하는 정치인보다 더 많은정치인이 자질이나 인격면에서 훌륭하고 또 열심히 일하고 있으며, 진정으로 국민을 걱정하고 공부하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정치판이 드라마 '여인천하'가 보여주는진흙탕만은 아닐 것이라고 믿는 까닭이다.

김경애(동덕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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