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성자동차 정비사 손현경씨

자동차 정비사 손현경(29.동아쇼핑 별관 주차장 '카 토피아')씨. 차 밑으로 몸을 쑥 집어넣고 엔진오일을 교환하고 능숙하게 바퀴를 갈아끼운다. 황토빛의 자동차 정비복을 입은 데다 큰 키 탓에 스쳐 지나는 사람은 그가 여자임을 눈치채기 힘들다.

이곳 사람들은 그녀를 손 기사라고 부른다. 웬만한 직장이라면 손양, 미스 손이라고 불리기 십상이지만 정비 공장에서 그녀는 남자 기사와 다를 바가 없다. 월급도 같고 기름을 묻혀야 하는 업무도 같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더하거나 덜할 게 조금도 없다.

손현경씨가 정비사가 된 것은 이제 한달 남짓. 아버지는 딸이 자동차 정비사로 나선 사실을 모른다. 완고한 성품에 여성스러움을 강조하는 분이라 어떤 반응을 보일는지 짐작조차 어렵다. 3년 동안의 '무직 시위'로 어머니 설득에 겨우 성공했을 뿐이다.

손 기사에게는 자동차 정비 자격증 외에 자격증이 또 있다. 꽃꽂이사범 자격증(3급)과 한식 조리사 자격증. 부모님은 손 기사가 여성스러운 직업을 갖기를 바랐다. 손 기사 자신도 기대에 부응하려 노력했다. 애써 자격증을 획득했고 3년 정도 꽃꽂이 일도 했다. 그러나 도무지 어울리지 않음을 알았다.

자동차 정비사의 꿈을 가로막는 것은 부모님뿐만이 아니었다. 여러 차례 직업전문학교에 노크를 했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다른 직업 알아보세요. 여자는 곤란합니다" 라는 대답만 반복해서 들었다.

손 기사는 올해 2월 경북산업직업전문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을 행운이라고 말한다. 쉽게 입학한 남자 동급생들 중 다수가 자격시험에 떨어졌지만 손 기사는 3가지 자격증을 따냈다. 정규수업 외 과외수업까지 빠지지 않고 청강한 덕분이다.

하루 종일 자동차 공부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는 자격증 취득과 동시에 '카 토피아'에 취직한 것은 복이 터진 것이라고 믿는다. 여성 정비사가 설자리가 너무 좁아 잔뜩 주눅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꽃꽂이와 요리를 버리고 자동차 정비사의 길을 택한 것은 이 땅의 여성 차별에 대한 작은 반란이다.

"여성 운전자에겐 터무니없이 바가지 씌우는 분위기, 고장난 차를 수리할 때는 나이 어린 아들이라도 데리고 가야 엉뚱한 소리를 피할 수 있는 풍토가 너무 싫었어요. 길에서 차가 고장나 난감해 하는 운전자를 보면 도와주고도 싶었고요".

손 기사는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일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동차 수리도 예외일 수 없다. 꼼꼼히 수리하고, 바가지 씌우지 않고, 거기에 친절까지…. 그녀의 흐린 말끝엔 '오히려 여자가 낫다'라는 말이 숨어 있는 듯 하다.

손현경씨는 정비업계에서 '아, 그 사람'이란 소리를 들을 만큼 뛰어난 정비사가 되고 싶다. 나이들면 여성에게 자동차 정비를 가르칠 요량이다.

여성이 여성의 특징을 더 잘 아는 만큼 훨씬 쉽게 가르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한다.손 기사는 며칠 전 '고맙다'며 호떡 4개와 음료수를 주고 떠난 손님에게 감사하다며 인사했다.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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