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배달사고'

'배달사고'란 용어정의가 새삼 필요해졌다. 기다리는 신문이 하루 안들어 올때, 주문한 자장면이 손님이 일어설때까지도 안올때, 부친 서류가 마감날짜에 도착 안했을때, 그게 배달사고다. 그런데 요즘의 배달사고, '뇌물전달을 부탁받은 사람이 그 돈을 중간에서 떼먹는 일'을 초등학생들에게 무어라 설명할 것인가?

이른바 진승현게이트에서 민주당 당료였던 최택곤씨가 신광옥 전 민정수석비서관에게주겠다며 진씨로부터 받은 1억원 중 8천200만원이 배달사고가 났다고 한다.

▲검사들은 "뇌물수사는 참 힘들다"고 실토한다.

준사람은 있고 받은 사람이 없는 게 뇌물사건이요, 판사님들의 증거제일주의를 충족시키지 못하면'실패한 검사'가 되기 십상이다. 설사 받았다 실토해도 '대가성' 입증 또한 필수적인데, 피의자가 막판에 오리발을 내밀면 만사헛일. 한푼도 안먹었다는 신광옥씨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구속된 것은 앞뒤 정황상 신씨가 뇌물의 일부를 받았고 대가성(代價性)도 있음을 법원이 인정했다는 얘기다. 그러면 나머지 배달사고 난 돈은 어디로 갔느냐가 또 문제가 된다.

▲증거부족으로 뇌물사건 무죄판결이 잦은 가운데 최근엔 배달사고 무죄판결까지 나와 뇌물의 검은 보자기는 도대체 아리송하다. 뇌물수수 사실또는 그 대가성을 입증못해 감형이나 무죄가 선고된 정치적 사건도 올해만 3건이다.

지난 6월의 금감원 고위간부의 뇌물사건은 6천만원 중 5천500만원에 대해 배달사고를 인정해 버렸고, 3천만원 수수사건에 휘말린 한나라당 ㅇ의원의 경우 전액 배달사고를 인정, 무죄판결했다.

▲'배달사고'를 법률용어로 쓰면 불법원인급여(不法原因給與)라고 한다. '노름빚은 빚이 아니다'는 대법원 판례에서 보듯 뇌물이나 리베이트,노름 판돈은 원인자체가 불법이므로 그 돈을 떼먹었다고 처벌하면 국가가 '검은 돈'을 인정하는 꼴이어서, 배달사고에 대한 법적책임은 물을 수 없다는 논리다.

따라서 진 게이트의 최씨가 "나머지 돈은 내가 떼먹었다"고 버티면 배달사고(해당부문 무죄)가 되고,내친 김에 다 불어 버리면 진 게이트의 몸통까지로 사태는 확산된다.

▲지난 주말 서울지법은 대출사례비명목으로 인출한 회사돈을 은행간부들에게 전달않고 떼먹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벤처기업 간부에게 무죄판결했다.'법률상 불법적인 원인으로 전달된 돈의 소유권은 돈심부름꾼에게 있다'며 배달사고의 횡령죄 불성립을 판시한 것이다. 뇌물에 대한 범죄입증요건이 까다로워지면서 공무원들의 부패불감증도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

내년부터는 단체장·대선 등 각종선거가 줄을 잇는다. 밑바닥(유권자)까지뿌린 자금의 50%만 내려가도 당선이라는 선거판의 배달사고-그로 인한 선거부패는 얼마나 심각할 것인가. 벌써부터 걱정이다.

강건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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