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新正 '눈 도장'

권력이 있을 때는 갖은 아첨을 떨다가도 실세(失勢)했다 싶을 때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게 염량세태(炎凉世態)의 세상 인심이다. 그렇지만 간혹 세상의 흐름을 읽는 정치 고수(高手)들 중에는 염량의 세태를 거슬러서 '별 볼 일 없는' 사람과 손잡고 득세한 경우도 없지 않았다.

▲조선조 단종 때 칠삭둥이 한명회가 당시로서는 힘없는 왕족에 지나지 않던 수양대군 집에 들락거리다 끝내 '수양'을 세조로 등극시키고 자신은 그의 오른팔로 득세한 경우는 그 대표적인 사례. 어쨌든 그처럼 수 읽기에 능했던 한명회가 볼 일 없는 수양대군을 선택한 이유인 즉 '권문세가에 가면 댓돌에 신발이 너무 많아 내 신발을 찾을 수 없지만 수양대군 집에 가면 신발이 별로 없어 내 신발을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던가. 결국 한명회는 보스와 '눈 도장' 찍기가 훨씬 수월한 수양대군 쪽에 줄을 서는 것을 신분상승의 첩경으로 이해했던 것만 같다.

▲세월이 바뀌었지만 요즘같은 민주시대에도 정치 실세(實勢)를 찾는 세상 인심은 옛날 조선조 때보다 오히려 더해가는 것만 같다. 헌정사상 최초로 정권교체가 이뤄지자 98년 신정에는 그동안 별 볼일 없던 DJ 가신 그룹인 동교동 실세들 집에 전례없는 세배 인파가 밀려들었고 실세중의 실세인 K씨집에는 1천명의 세배객이 몰린 것도 세상인심이 얼마나 빠르게 변하는지 알려주는 척도가 됨직하다. 97년 신정때만해도 당시 여당이었던 한나라당의 이회창 총재와 주요 당직자들 집에 문전성시를 이뤘던 발걸음이 98년에는 뚝 끊기고 국민회의와 자민련쪽에는 세배객들이 남의 신발을 밟아가며 몰려들었으니…이야말로 권력은 잡고 볼 일 아닌가.

▲한동안 잠잠하던 신정(新正)세배가 올해는 기승을 부릴 것이라 한다. 안방 정치란 비판 여론 때문에 한때 좀 숙지는 듯 했지만 올해는 지방 선거와 대선을 꿈꾸는 후보들이 많기 때문에 벌써부터 많은 여야중진들이 자택의 안방을 개방, 눈도장을 찍고 정치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벌써 YS를 비롯 전(全), 노(盧) 전대통령이 안방을 열어놓고 있나하면 이회창 총재와 한광옥 대표가 또한 그렇다. 이밖에도 이인제 고문과 박근혜 부총재가 자택 개방을 검토중인가 하면 많은 다른 대선후보 지망생들도 안방을 열 것을 고려중이라니 97년 신정때 신한국당 대선 후보 '9룡'들이 안방을 열었던 것이 다시 생각난다. 어찌보면 대권을 꿈꾸는 정치인들이 모처럼의 신정 세배 나누는 것을 굳이 나무랄 생각은 없다. 다만 신정세배가 이합집산으로 대권 잡을 욕심만 부리는 자리가 아니라 민심의 소리를 듣는 자리이기를 바랄 뿐이다.

김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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