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감옥'이라는 말은 미국의 철학자가 쓴 책의 제목이다. 일종의 동상이몽이라고 할까. 제목이 마음에 들어, 제목만 골몰히 쳐다보곤 했었다. 일상에서 나는 이놈의 말(언어) 때문에 넘어지거나 다치는 경우를 많이 당한다.
그래서 논리적인 언어로부터 분노.슬픔.아픔.기쁨 등의 감정에 갇히게 되어, 비합리적인 행동에 이르게 되는 상태를 '언어의 감옥'이라고 내 멋대로 이해했다. 이 경우는 말 때문에 감정이 앞서 본질을 못 보게 되는 경우이다. 그렇다고 해서 말 자체가 본질을 온전하게 담아내는 것도 아니다.그래서 어떤 철학자는 말이 표현수단으로 얼마나 엉성한지 대해서 이야기한다. 말보다는 오히려 헉- 하고 놀라는 표정이나, 쯔쯧- 하고 애달파하는 표정, 그리고 한순간 휙- 지나가는 냉소나 멸시의 표정에 그 표정이 마주한 사건의 모든 내막이 담겨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언어로 그 표정을 생포할 수 없는 이상 무슨 방법으로 그것을 전달할 수 있으랴.
앞을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도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 변을 당했던 카산드라(아가멤논의 연인:그리스 비극의 등장인물)의 경우를 보면, 우리에겐 '언어 밖에'없다. 감정에 휩싸이게 하면서도 감정의 생포에는 이르지 못하고, 그렇다 하더라도 언어를 통할 수밖에 없는 '말도 안되는 말'에 묶여있는 상태가 언어의 감옥인 것 같다. 이것이 언어의 감옥에 갇혀 사는 언어적 존재의 비극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사는 동안 언어의 그물망을 벗어날 수 없고 한번의 미소로 뜻이 통하는 염화시중의세계가 범상한 것이 아니라면, 범부대중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언행을 삼가고 겸손해지는 길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도 제일 안되는 일 중의 하나이지만, 두 달 동안 매일춘추 천자(1000자)의 틀에 얽매여 천일자(1001자)와 구백구십구자(999자)사이에서, 천자로 할 수 있는 말과 없는 말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쏟아놓은 나의 말과 행동을 되돌아본다.
남인숙(갤러리 M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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