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엔 크리스마스가 없었다. 신체가 부자유하거나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 10여명 아이들의 작업장. 기름난로를 피웠지만 겨우 견뎌낼만한 온도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장난감'공기'알을 15개씩 분류해 통에 넣는 단순작업을 하고 있다. 다들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기대감으로 들떠있고 선물을 주고받으며 떠들썩하지만 이들에겐 크리스마스라고 해서 하루 일과가 별다르지 않다.
25일 오후. 대구 달서구 상인동 대동시장내 '나눔공동체'는 교회에서 운영하는 시설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하다. 이곳은 정신지체.중증 뇌성마비 등 30여명 장애인들의 보금자리다. 시장 안 상가건물을 세내 3.4층은 이들의 생활공간으로, 지하는 '나눔의 교회'로 쓰고 있다.
3층의 작업장에 들어서자 몇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아이들과 공기놀이를 하고 있었다. 작업장이라지만 딱히 돈을 벌자고 하는 일은 아닌 듯 했다. 10여명이 하루 4시간 정도 일해 버는 돈은 월 50만원 정도. 일보다는 아이들의 유일한 소일거리라는데 더 관심을 두는 듯 했다. 한쪽에선 자원봉사 교사인 오영희(37)씨가 틈날 때마다 와서 재봉틀을 돌린다.
옷주머니를 만들어 납품, 공동체살림에 보태기 위해서란다. 작업장 벽면으로는 조립식 칸막이로 된 5개의 방이 자리잡고 있다. 지난달 말 '작은 가정'을 목표로 분가해 살고있던 15명을 돈이 없어 이곳으로 합치면서 만든 방이다. 원래 15명이 살던 공간에 30명의 대식구가 몰리면서 그야말로 북새통. 이렇게 이들의 힘겨운 겨울나기는 시작됐다.
"겨울은 닥쳤죠. 급한 김에 작업장 한 켠에 전기판넬을 깔고 방을 만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원래 상가건물이다보니 난방엔 어려움이 크지요".
나눔공동체 대표 이왕욱(41) 목사는 월동준비가 됐냐는 물음에 난방걱정부터 했다. 전기판넬로는 난방비를 감당할 수 없고 별로 따뜻하지도 않기 때문이란다. 올해는 김장을 담가주는 사람조차 없다. 더 안타까운 것은 목욕탕이 없어 베란다에서 아이들을 씻겨야 한다는 것. 혼자 힘으로는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환(13)이를 씻기기 위해 방에서 데려나오자 벌써 추위에 덜덜 떨기 시작한다.
"목욕시키다 보면 씻기는 사람은 땀으로 뒤범벅이고 아이들은 추위에 새파랗게 질립니다. 그나마 장소가 좁아 애를 먹죠". 매주 화요일마다 자원봉사를 나오는 주부 허인순(33.대구시 달서구 상인동 청구아파트)씨는 목욕이 겨울철 가장 큰 행사라고 하소연했다.
30명 장애인중 20명이 대.소변을 못가리고 식사도 혼자서는 못할 정도의 중증장애인.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이 없이는 운영자체가 어렵다. 현재 한 달에 10여개 팀이 봉사를 나오지만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이들 장애인 30여명과 함께 살아가는 이 목사는 대책마련에 분주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지금보다 아늑한 전셋집에 있다 이쪽으로 옮겨와야 했던 현실 때문에 그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그러나 교인숫자 30여명의 초미니 교회를 이끄는 이 목사가 작지만 소중한 나눔의 삶을 살고 있는 걸 보면 놀랍다.
'사랑의 밥상을 마련합니다'. 나눔공동체가 세들어 있는 건물엔 이색적인 플래카드가 하나 걸려 있다. 토요일 점심시간, 이곳에선 또다른 잔치가 벌어진다.
지난 10월 8일부터는 무료급식도 실시하고 있다. 홀몸노인, 노숙자 등 70여명이 이곳에서 따뜻한 점심을 먹는다. 94년부터 매년 150만원씩 보내는 소록도교회에 올해도 빼먹지 않고 돈을 보냈다.
도대체 어떻게 교인수 30명의 초미니교회가 건물 임대료를 감당하며 무료급식을 하고 30명 중증 장애인들을 돌볼 수 있을까? 이 목사는 따뜻한 이웃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고기 아저씨' 장현욱(33)씨가 들어서자 아이들이 제일 반가워했다. 오늘도 돈가스 100개들이 1상자를 가져왔다. "봉급생활자이다보니 신경을 많이 써주지 못해 마음이 아픕니다". 대구축산농협 육가공 공장에 근무하는 장씨는 작년 추석부터 매달 한두번 공장에서 자비로 고기를 사들고 온다.
아이들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바쁜 장수문(33) 해군상사는 매달 일정액을 내는 후원자. 진해에서 근무를 마치고 들렀다. "진해에도 장애인시설이 있는데 너무 화려해 할 일이 별로 없더라구요".
이곳은 비인가시설이라 국고보조가 전혀 없다. 개인후원자들의 힘만으로 운영된다. 150여명 후원자 대부분이 한달 1만원 미만을 후원하는 개미군단들. 그렇지만 올해는 이런 개인후원도 경제난으로 많이 끊겼다.
살림규모도 거기에 맞춰 많이 줄여야할 판이다. 신앙심으로 버티고 긴축생활에도 이젠 익숙해져 그나마 다행이다.장애인들과 함께한 10년 동안 그는 23번이나 이사를 했다. 10년간의 목회활동에서 교인은 30명뿐이다.
덩치부터 키우고 보는 한국교회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못할 부분이다. '우리는 가난하게 살겠습니다'. 나눔공동체 벽면에 걸려있는 글에서 따스한 마음들이 모인 천국을 느끼게 된다.
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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