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하는 오후

나무에는 마디가 있다자라면서 피곤한

삶을 쉬었다 간 자리다

혹은 그 흔적이다

달리는 열차의 마디는

역(驛)이다

나의 집은

나의 마디다

무덤은

인간이 남기는 마지막

마디다

-박주일 '마디라는 것은'

여든을 앞둔 노시인의 시이다. 수사가 절제된 간단한 시처럼 보이지만 젊은이들이 감히 흉내내지 못하는 인생의 높은 연륜이 느껴진다. 이 시에서 마디는 피곤한 삶을 쉬었다가 가는 자리이다.

천상병 시인은 인생을 소풍에 비유한 바 있는데 이 시 또한 비슷한 발상이다. 마지막 연의 "무덤은 인간이 남기는 마지막 마디다"라고 했을 때 마디는 지친 삶이 쉬었다가 가는 흔적인 것이다. 인생에서 마디를 느낀다는 것은 그 삶이 충분히 원숙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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