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철밥통도 옛말(?)

정권 교체 때마다 효율적인 정부를 내세우며 기구 개편을 했으나 공무원 수는 해마다 늘어났다. 기구 역시 개편 때는 줄어드는 것 같다가 곧 원상이 회복되거나 오히려 커지는 경우도 허다했다. 일정 직급까지는 정치 바람을 타지 않을 뿐 아니라 '평생 직장'이 보장됐다. 개혁과 구조조정의 회오리 속에서도 이 사회만은 무풍지대였다. 이같은 개념이 공직 사회의 나태와 무사안일을 부추기기도 했다. 오죽하면 평생 밥그릇을 보장한다 해서 '철밥통'이란 말까지 나왔겠는가.

한때는 공무원들이 땅에 엎드려 움직이지 않는다고 '복지부동(伏地不動)'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현 정부 들어서는 아예 땅이 됐다며 '신토불이(身土不二)'란 유행어도 나왔다. 게다가 현직에서 물러난 공무원들을 다시 산하 단체나 관련 기업으로 자리를 옮기도록 알선해 주니 '모피아(MOFIA:재경부 출신의 마피아)'라는 별명이 생기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젠 그 '철밥통'도 옛말이 되고 있는 모양이다.

해외로 이민을 떠나는 공무원이 늘고 있다.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1998년에 이민을 간 공무원이 60명에 불과했지만 99년엔 2배에 가까이 늘어난 117명에 이르렀다. 지난해는 3배 가량인 163명으로 늘었다. 또한 이민 알선 업체들의 상담 건수 가운데는 4, 5%가 현직 공무원들의 요청인 것으로 나타났고, 지난 2월에는 교육공무원들만 대상으로 알선하는 전문업체까지 생겨나 300여명이나 신청할 정도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렇다면 '철밥통'으로까지 불리던 공무원들이 왜 '평생 직장'의 꿈을 버리고 해외로 떠나려 하는 것일까. 명예퇴직과 정년 단축 등으로 인한 신분 불안, 자녀 교육 문제 등이 가장 큰 이유인 모양이다. 박봉에다 자부심이 사라졌다거나 신분 불안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는 경우도 있고, 사교육비 부담이 너무 크지만 자녀들이 힘들어 하고 미래마저 불투명해 장래를 위해 떠나기로 했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외국에서는 공무원 경력을 써먹을 데가 없다. 그래서 이민을 떠나려는 공직자 중에는 배우자와 함께 미용 기술, 차량 정비 등을 배운다고도 한다. 공무원들의 해외 이민이 늘어난 요인 중에는 소속 기관장의 동의서를 받아야 하는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뀐 데도 있다고 하지만, 아무튼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지옥을 떠나는 행복한 이들이 아닌, 지옥에서 견디면서 실낱 같은 희망을 부둥켜안고 사는 우리는 무슨 말로 위안을 삼아야 할 것인지….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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