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전령이자 공동체 의식의 상징인 '쥘(Gille)'의 가면 축제. 뱅슈(Binche) 카니발은 벨기에는 물론 유럽의 가장 대중적인 축제 중 하나로 꼽힌다.
12세기 성벽으로 둘러싸인 고색창연한 도시 뱅슈는 비록 인구 1만의 작은 도시에 불과하지만 여기서 열리는 카니발 만큼은 전 유럽에 걸쳐 오랜 전통과 아름다움을 자랑한다.축제가 열리는 시기는 3월 22일에서 4월 25일 사이.
부활절에 따라 매년 일정이 달라진다. 축제의 피크는 사순절(四旬節) 시작 전 일요일.월요일과 참회의 화요일에 열리는 카니발. 그중에서도 참회의 화요일은 축제의 최고 절정을 이룬다.
뱅슈 축제의 왕이요 주연배우들인 쥘의 엄청난 행진이 '마르디그라(mardi gras)'로 불리는 이날에야 등장하기 때문이다.
쥘의 차림새는 아주 특이하다. 300여개의 타조 깃털로 장식한 거창한 모자는 뱅슈 축제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치장이다흑.황.적색의 사자문장으로 된 옷을 입고 가슴과 등을 짚으로 잔뜩 부풀린 쥘은 어깨를 넓은 레이스로 덮고 있다.
여기에다 허리에는 방울종을 단 띠를 두르고 나막신을 신은채 북치는 사람들과 함께 새벽부터 집집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그동안 날이 새고 도시 한복판에는 어느새 사람들로 북적대기 시작한다. 이날 아침 쥘들은 녹색 안경에 구레나룻 수염을 한 특이한 밀랍 가면을 쓰고 춤을 추며 행진을 벌인다. 춤이라야 별게 아니다. 날씨가 추우니 몸을 흔들어 움직일 수밖에….
정오를 알리는 북소리와 함께 가면을 벗고 타조깃털로 만든 유명한 모자를 쓰고 오렌지를 던지며 행진을 벌이다 마지막에는 시청 앞 광장에 원형을 그리며 모인다.
뱅슈에는 이같이 축제 참가자들의 오렌지 세례 덕분에 깨진 유리창을 교체하느라 적잖은 돈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도시 중앙로의 어떤 집들이 1층 창문을 철망으로 막아 놓은게 마치 군사정권 시절 우리나라 대도시의 파출소를 연상케 한다.저녁이 되면 쥘들은 무거운 모자를 벗고 시민들과 어울려 폭죽과 불꽃놀이로 카니발의 피날레를 장식한다.
축제는 성회례의 수요일 첫새벽에 끝나고 뱅슈는 다시 평온을 되찾으며 사람들은 이제 오는 봄을 기다린다.
축제기간 뱅슈에는 유럽과 세계 각국에서 10만여명의 인파가 몰려든다. 이때 도시 주변 상가는 물론 인근 숙박업소들까지 엄청난 호황을 누린다. 축제 특수로 얻는 수입의 일부를 다음해 축제 준비를 위해 비축해 둘 정도이다.
뱅슈 축제는 1549년 8월 헝가리의 '마리'라는 당시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여동생이 뱅슈에 머물고 있을 때 황제와 황태자가 이곳을 방문하자 이를 기념하는 잔치를 연 것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미셸 흐블라(Michel Revelard) 뱅슈 카니발 및 국제탈박물관장은 "당시 얼마나 야단스럽고 대단하게 놀았으면 '라인강 서쪽에 아무러면 뱅슈 축제만한 것이 있을까'란 속담까지 생겼다"며 "그때의 의상과 놀이 풍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전한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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