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춘대담-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경제가 올해도 회복이 불투명하다. IT산업 위축, 남미의 외환위기, 일본의 금융불안 등이 여전히 악재로 작용하고 있는데다 지난 9.11테러 여파가 세계경제에 어떻게 작용할지 불분명한 상태다. 국내경제 또한 세계경제 탓에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

더욱이 올해는 지방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어 자칫 정치논리가 경제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커 국내경제는 IMF를 통해 다져온 기반마저 흔들릴 우려가 높다.

본사 이진협 서울지사장이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을 만나 올해의 세계경제와 국제관계, 지역 경제의 비전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대담은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무역센터에 위치한 세계경제 연구원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이진협=미국의 불황, 남미의 외환위기, 일본의 구조조정 미흡 등으로 비관적인 경기전망을 내놓고 있는 학자도 있습니다.

사공일=미국경제는 9.11 테러 이전부터 하강국면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9.11사태 이전에는 2001년 4/4분기나 2002년 1/4분기에는 경기가 회복될 것으로 전망했지만 이제 미국 경제 회복시기는 적어도 반년정도 늦어질 것으로 봐야 합니다.

더욱이 테러참사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경제는 공식적인 경기후퇴(recession), 즉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은 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었으나, 참사 이후 위축된 소비로 미국 경제는 현재 공식적인 경기후퇴를 맞고 있습니다.

이=반면 유가안정, 아프간 전쟁 조기종식 등으로 그렇게 절망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습니다.

사공=사실입니다. 낙관론자들은 테러사태 이후 미국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려왔고 감세정책에다 잇단 금리인하로 소비심리가 정상을 되찾게 되면 오히려 경기 회복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어쨌든 현재 대테러 전쟁 진행상황으로 보면 올 하반기부터 좋아지는 것은 분명하다고 하겠습니다.

이=일본인들은 왕세자비의 출산이 일본경제 회복의 호기로 작용했으면 하는 염원을 가질 정도로 장기불황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지난해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고 앞으로 몇 년간은 경기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전망입니다. 올 일본경제를 어떻게 전망하고 계십니까.

사공=현재 일본은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으면서도 회복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최근 일부 세계금융 전문가들은 세계경제회복의 가장 위협적인 요인으로 일본의 금융부문 파탄을 꼽을 정도입니다.

금융기관의 부실 문제 등 일본경제의 구조적인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정치적으로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나 지난 10년간 그런 리더십을 갖지 못했습니다.

이=국제 외환시장에서 일본 경제의 장기침체에 대한 우려감이 높아지면서 엔화 가치가 3년2개월 만에 달러당 127엔선(12월13일 현재)을 넘어섰어요. '원고엔저'현상은 우리 수출에 악재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사공=일본의 장기 경기침체와 금융부문의 취약성 등을 감안할 때 엔화약세 기조는 상당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엔화 약세는 우리 수출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이 최악의 금융위기는 면할 수 있다고 본다면 우리의 경기회복을 가로막을 정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이=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가입에 따른 성장잠재력을 어떻게 보십니까.

사공=중국이 공식적으로 세계경제의 중요한 일원으로 참여한다는 뜻입니다. WTO가입으로 중국은 수출입이 늘고 관세도 낮춰 우리나라의 수출기회도 늘어날 것입니다. 교역이란 '제로섬'이 아니라 '윈-윈'이라는 점에서 중국 경제와 세계경제 전체에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13억 인구가 한해 7~8%씩 성장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러나 우리의 일부 제조업종은 중국과의 경쟁에 불리하여 구조조정이 불가피하고 단기적인 실업이 빚어지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이=중국에서 인건비가 생산원가에 미치는 비율이 고작 1.8%지만 우리는 10.8%나 됩니다. 제품의 질이나 노동생산성에서도 우리에게 뒤지지 않으니 국내 기업들이 막차를 타는 심정으로 중국진출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나친 중국진출은 국내산업의 공동화 현상을 낳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사공=경제 발전은 사다리를 올라가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이 우리 뒤에서 한발 한발 올라와 우리와 겹치는 부분이 생기게 마련인데, 그러면 우리는 한 단계 높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계속 올라가야 합니다. 또 겹치는 부문을 계속 고집하다가는 밑에서 따라오는 쪽에 질 수밖에 없어요.

우리의 전통산업은 신경제와 접목시켜 생산성을 올려야 합니다. 업종전환의 고통을 겪어야 하고 구조조정을 위한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정부도 나서서 적극 지원해야 합니다. 이=올해는 유럽의 통화동맹에 따라 유로화가 공식 통용되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른 세계경제에의 영향은 무엇입니까.

사공=유럽은 오랫동안 경제통합에 많은 노력을 쏟아왔고 마지막 단계로 단일통화를 도입했습니다. 단일 유로화를 쓰게 되면 유럽국가간 거래비용이 줄어 결과적으로 유럽내 거래는 늘어날 것입니다. 이는 외국기업에게는 단기적으로 불리한 요소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반면 긍정적 측면도 큽니다. 즉 유럽국가간 교역량이 늘고 경제성장이 빨라지면 외부 수요도 늘게 돼 우리의 수출기회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아프간 전쟁이 미국의 승리로 굳어질 경우 세계질서가 미국중심으로 강화될 가능성이 크지 않나요.

사공=소위 미국의 일방주의적인 접근태도에도 어느정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봅니다. 사실 전쟁발발 이후 미국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각국을 돌며 전쟁동의를 얻는 일이었지 않습니까. 경제적 측면에서도 테러리즘이 '도하 회의'에서 회원국들의 합의를 얻어내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반덤핑 문제는 미국이 양보하고 농업 문제는 유럽과 개도국이 양보해 뉴라운드가 출범한 것은 미국의 설득과 노력이 반영됐기 때문입니다.

이=미국의 '슈퍼파위'가 세계경제에 어떤 역할을 할 것으로 보입니까.

사공=오늘날의 세계는 초강대국인 미국과 함께 유럽연합(EU), 일본 그리고 중국 등 몇몇 강대국들이 공존하는 '단일-다극 체제'(uni-multipolar system)하에 놓여 있습니다. 쉽게 말해 지구촌 마을에 큰 어른과 함께 영향력 있는 중간 어른이 공존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전체 차원의 의사결정과정이 더욱 복잡하게 되고, 분쟁의 소지가 많아지게 됐습니다. 그래서 끼리끼리 이해관계에 따라 모이는 쌍무주의(bilateralism) 내지 지역주의(regionalism) 추세도 가속화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테러사태를 계기로 미국은 주요국들과의 공조 노력을 과거보다 더 강화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올해는 월드컵 개최 및 지자체 선거, 대선 등 국가 중대사가 있는 해입니다. 따라서 현 정부는 지금까지의 개혁과제를 마무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사공=선거철을 맞아 경제를 뒷전으로 미룬 채 정치논리에 휘말려 경제정책이 흔들리는 상황이 일어날까 걱정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선거전에 중요한 개혁과제를 마무리 짓자고 했지만 미진한 부분이 많습니다. 88년 여소야대 상황에서 야3당이 서로 인기영합책 경쟁에 나섰고 정부여당마저 야당에 뒤지지 않는 인기책들을 남발했어요. 97년의 경제위기도 따지고 보면 그때부터 그 씨앗이 뿌려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최근 감사원의 '공적자금'에 대한 감사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눈먼 공적자금'이란 표현처럼 부실과 도덕적 해이를 더욱 부추긴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사공=과연 공적자금 투입이 옳았느냐, 아니면 대량 실업과 금융시장의 큰 혼란을 겪더라도 부실은행이나 기업을 파산시키는 것이 옳았느냐는 국민이 판단할 문제입니다. 공적자금을 투입하지 않았을 경우 파산과 실업, 저축자의 손해가 불가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실업도, 파산도 다 싫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 공적자금을 넣을 수밖에 없었어요.

국민들이 외국기업에 매각하는 것을 반대, 결국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공적자금이 더 들어간 부문도 많이 있습니다. 일부 기업과 금융기관은 일찍 팔았다면 제값 받고 공적자금도 덜 들고 일자리도 잃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외국기업의 직접투자가 저조합니다. 배타적이고 보수적인 사고방식이 문제일 수 있습니다.

사공=경제개발 초기 우리나라는 차관만 들여왔지 외국기업이 오는 것을 싫어했어요. 실제로 외국기업 진출을 막는 쪽으로 법이 만들어 졌고 또 운영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여건을 만들어 외국 기업을 많이 유치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정부는 일관된 정책을 통해 예측가능한 거시정책을 마련하고 필요없는 규제와 간섭을 없애고 사회간접투자도 확충해야지요.

이=노동시장의 안정도 중요한 사항중의 하나지 않습니까.

사공=그렇습니다. 외국의 국내 직접투자가 저조한 가장 큰 이유중 하나가 투쟁적인 노사관계입니다. 세계 모든 나라가 쌍수를 들고 외국기업을 반기는 판에 노사문제로 골치아픈 나라에 일부러 투자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이=대구.경북의 생존전략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사공=무엇보다 국제적 안목을 가진 사람을 길러내야 하고 남과 손잡고 일하는 지혜부터 길러야 합니다. 자기가 제일 잘났다는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밀라노 프로젝트도 세계적인 패션디자이너나 섬유업체와 손을 잡아야지 그렇지 않고는 대구가 하루아침에 밀라노가 될 수 없어요.

또 제조업보다는 부가가치가 높은 정보화 관련 사업과 관광, 컨벤션 등 서비스산업, 그리고 지식산업 쪽으로 특화해야 합니다.

이=지방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혁명적인 지방정책을 펴야 합니다. 근본적인 지역육성책이야말로 지방이나 국가경제가 발전할 기틀이 되는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사공=국가차원에서 행정.교육개혁 등 종합적인 정책을 통해 국토균형개발 문제를 다뤄야 합니다. 사실 전국이 1일 생활권인데 서울에만 있을 이유가 어디 있나요. 행정의 대폭적인 지방이전은 반드시 필요하며 특히 교육개혁과 관련, 좋은 선생님들이 지방에서 많이 강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각 지역 특성에 맞는 전문화된 교육기관을 둬야 해요. 정부에 돈을 요구할 때도 구체적인 프로그램과 연결시켜야 합니다.

이=지역인재할당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사공=쿼터제는 당장은 효과가 있을 지라도 장기적으로는 부작용도 많아요. 외국의 경우에도 보면 쿼터제의 순기능과 함께 역기능도 많이 노출되고 있습니다. 시장기능에 맡겨야 합니다.

이=국제정치 내지 국제역학 문제도 경제문제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중동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 피의 보복전이 재연돼 전면적인 중동전에 대한 우려도 있습니다.

사공=아프간 전쟁이 소말리아, 이라크 등지로 크게 확전될 것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미국은 물론 세계경제가 침체상태인데다 중동지역의 확전이 자칫 유가를 상승시킬 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부시 대통령은 걸프전 이후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이 높은 인기에도 불구, 경제문제로 선거에서 진 교훈을 잊지 않고 있을 것입니다.

이=끝으로 북한이 중국식으로 개방할 것이라는 희망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공=북한은 중국과는 체제, 국가규모, 남한의 존재 등 근본적으로 다른 나라입니다. 또한 김정일 체제 유지의 유일한 수단이 북한주민의 대외접촉 차단인데 북한이 중국식 개방으로 체제의 몰락을 원할 리 없습니다. 따라서 중국식 개방 정책을 쉽게 도입하리라 보지 않습니다.

지금 같은 '벼랑외교'를 유지하면서 경제를 살리려고 최대한 버티어 보겠지요. 다만 우리는 북한을 경제적으로 도와주면서 서서히 변화시키는 방법이 우리가 지불해야 할 통일비용을 줄이는 길이라고 봅니다.

정리=김태완기자 kimch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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