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83년만의 개명

동해냐 일본해냐 하는 바다 명칭문제를 두고 한.일간에 보이지 않는, 심각한 샅바싸움이 붙어있다.

무역전쟁.테러전쟁에는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 지명(地名)전쟁에는 대중적 관심이 약한 게 현실이지만, 정작 동해냐 일본해냐 하는 것은 국력의 상징성, 한 나라의 자존심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

▲이 동해의 명칭이 일본의 장난으로 국제공인 무산위기에 처해 있다. 전세계 해역명칭의 표준화를 관장하는 국제수로기구(IHO)가 오는 4월, 50년만에 공식책자 '해양의 경계'제4개정판을 발간할 계획인데 동해.일본해를 병기해줄 듯 하다가 일본측의 반발로 제동이 걸려있다는 거다.

그만큼 국제적으로 명칭변경은 어려운 사항이다.

정부는 동해.일본해의 병기가 어려우면 한.일.러 3국이 합의하는 제3의 이름을 붙이자고 압박할 요량으로 있어 1.2월은 우리 외교력의 시험무대가 될 참이다. 한국과 중국사이에 있는 바다를 우리는 서해, 국제적으론 황해(Yellow Sea)로 불러 별문제가 없는데 유독 일본만은 나라이름을 갖다붙여 이 말썽이다.

▲국립지리원이 우리나라의 가장 동쪽 한반도의 꼬리부분, 포항시 대보면 대보리의 '장기곶' 명칭을 호미곶(虎尾串)으로 공식 변경했다. '곶'은 바다를 향해 뾰족하게 내민 땅. 조선 철종때 고산자(古山子) 김정호가 대동여지도에 달배곶(冬乙背串)으로 표기했던 것을 1918년 일제가 장기갑(岬)으로 바꾸고, 그도 모자라 '토끼꼬리'로 비하시켜 불러온 지 83년만의 개명(改名)이다.

일찍이 16세기 조선 명종때 풍수지리학자 남사고(南師古)는 산수비경(山水秘境)에서 '한반도는 백두산 호랑이가 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형상으로 백두산은 호랑이코, 이곳은 호랑이 꼬리에 해당한다'며 천하의 명당임을 알렸고, 육당(六堂) 최남선도 이곳을 호랑이 꼬리라 이름하고 영일만의 일출(日出)을 조선십경의 하나로 꼽았다.

▲이곳 일대는 기실 고려때부터 장기현으로 불렸고, 대보.동해.구룡포에 걸쳐 목장성(城)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장기의 기자가 '말갈기.기'자이고 보면 이곳이 군마(軍馬)용 목장터였음을 말해준다.

또한 이곳 '장기'일대는 조선조의 유배지였다. 지난해 12월22일 포항 장기초교에서 우암(尤庵) 송시열과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의 사적비 제막식이 있은 것도 이 두 분이 이곳 유배생활에서 많은 족적(足跡)을 남긴데서 연유한다.

근세에 들어와, 대륙을 향해 포효하는 이 '호랑이 꼬리'에 불이 붙을 때 국운이 융성한다는 말이 돌았는데, 이게 바로 포항제철의 용광로가 아니냐는 그럴듯한 해석도 있다.호랑이 꼬리가 마침내 제이름을 되찾았으니 2002년 한해를 기대해 봄직하지 않은가.

강건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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