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입시지옥의 경제학

희망의 새해가 밝았다. 부정, 폭력, 절망으로 얼룩졌던 묵은 해는 제발 멀리 가버리고,새해에는 좀 더 희망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해가 바뀌었다고 뭐 크게 달라질 게 있을까. 여전히 같은 해가 뜨고 지며, 작년의 하루나 올해의 하루나 다른 게 없다. 그걸 알면서도 낡은 달력을

떼어내고 새 달력을 걸며 무언가 희망을 가져보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만인이 희망에 부푼 새해 아침에 여전히 불안에 떨며 발뻗고 잘 수 없는 사람들이 있으니 입시생을 둔 부모들일 것이다.

지금은 바야흐로 입시 시절이라 입시생들에게는 그야말로 발등의 불이요, 부모, 가족들도노심초사가 그치지 않는다. 입시지옥이란 말이 나온지 오래 되었건만 지옥 불은 좀처럼 식을 줄 모르고 해가 갈수록 뜨거워져만 간다.

특히 올해는 수능고사가 작년보다 훨씬 어려웠고, 정부에서 석차를 발표하지않은데다가, 입시제도 개선이란 이름으로 각 대학이 경쟁적으로 복잡한 입시제도를 새로 도입하는 바람에입시 바닥이 여간 혼란스럽지 않다.

'한 줄 세우기'를 하지 않겠다는 허울좋은 목표 아래 정부가 교육개혁을 해왔지만 사실 빛좋은개살구일 뿐, 나아진 게 없다. 한 줄 세우기 대신 여러 줄을 만드는 바람에 어느 줄에 서야 할지 눈치 작전이 사상 최악에 이르렀다.

시험이란 게 어차피 경쟁인데, 석차를 발표하지 않는다는 것도 모순이다.석차를 발표하지 않으면 한 줄 세우기가 아닌지. 눈가리고 아웅도 분수가 있지 이건 코미디다.

그러나 분명히 석차를 발표하지 않았는데, 시내 모 고등학교에서는 전국 수석을 차지했다는 플래카드를 버젓이 학교 정문에 붙이고 있으니 이건 한 수 더 뜨는 코미디다.

경제원리로 입시지옥을 한번 풀어보자. 입시지옥이란 대학을 가려는 수요가 공급을초과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세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는데, 이를 각각 하책, 중책, 상책이라고 부르자.

첫째, 대학교육의 공급을 늘리는 것. 이것은 전두환 정부가 시도한 대학 정원 두 배로 늘리기 같은 것인데, 결과는 부실교육 등 참담한 실패로 끝났으므로 하책이라 할만하다.중책으로는 대학교육의 가격을 올리는 것, 즉 등록금 인상을 고려할 수 있다.

대학생들과 학부모들은 펄쩍 뛰겠지만 이는 대학에 대한 과잉수요를 푸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가장 큰 부작용으로는 가난한 학생들에게 가혹하다는 것인데, 이는 장학금 확대 등 보완책을 강구하면 해결될 수 있는 바, 이 방안은 중책 정도로 평가할 수 있다.

셋째, 뭐니 해도 상책은 대학에 대한 수요를 줄이는 것이다.이는 좋은 대학을 나와야 사람 대접 받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관습을 바꿈으로써 구태여 대학에 가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될 때 가능할 것이다. 말하자면 불평등한 학벌사회를 타파하는 것이다.

사실 평등사회란 말하기는 쉽지만 실행은 어려우며, 그 실현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역시 이렇게 가는 것이 정공법이며, 선진국은 다름아니라 이것을 달성한 나라들이다.이런 평등사회가 실현되기까지는 아무래도 입시를 둘러싼 과열 경쟁과 입시지옥은 피하기 어렵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니 입시제도를 기발하게 바꿈으로써 하루 아침에 입시지옥을 해결하겠다는 무모한 욕심은 버리는 게 좋다. 그러나 교육인적자원부와 각 대학은 아직도 그런 꿈에서 깨나지 못한 채 교육개혁이란 미명하에 온갖 새로운 실험으로 학생들과 가족들을 괴롭히고 있다.

결국 입시지옥의 해결책은 정부나 대학 바깥에 있다.장기적으로 사회와 경제를 평등한 방향으로 바꿔나가는 것이 근본 대책이다. 그 전에는 입시경쟁은 불가피하며, 별 뾰족한 묘수가 없다. 다만 입시생들에게 불필요한 혼란과 눈가리고 아웅 식의 거짓은 삼가는 것이 정부와 대학이 해야 할 일이다.

이정우(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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