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조계종 10대 종정 혜암(慧菴) 스님 영결식과 다비식이 3만여명의 애도 속에 6일 합천 해인사에서 치러졌다.
오전 11시 청화당 앞뜰에서 시작된 영결식에서 장의위원장 정대 스님(총무원장)은 "뼈를 깎는 수행으로 여러 수행자의 귀감이 되신 스님은 변화의 혼란 속에서 종도와 종단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셨다"고 추모했다.
영결식에는 스님.불자 외에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한광옥 민주당 대표 등 정치인 40여명이 참석했고, 남궁진 문광부 장관이 대통령 조사를 대독했다.
영결식에 이어 2천여개 만장을 앞세우고 1km의 행렬이 뒤따르는 가운데 법구(시신)는 3km 떨어진 다비장(연화대)으로 운구돼 1만2천여명이 서가모니불을 염송하는 가운데 다비식이 올려졌다.
장의위원회는 다비 일정이 7일 오전 끝나고 문중회의를 거쳐 8∼9일쯤 유품과 사리가 공개될 것이라고 밝혔다.
합천.정광효기자 khjeong@imaeil.com
"비봉산(원당암 미소굴 뒷산)은 첩첩하고 미소굴은 여여…" 한데 혜암 큰스님은 "만길 속 구렁에 있는 사람을 누가 구할 것인가! 어이?"라는 육성을 남긴채 세상 연을 끊었다. 그러나 "평생 한 벌 옷과 한 개 밥 그릇이면 족하다" "밥 축내지 말고 공부하며 부처님 법대로 살아라!"는 준엄한 충고는 중생들의 가슴에 길이 남았다.
0…영결식에 앞서 신심 돈독한 일부 신자들은 1994년 성철스님 영결식 때의 인산인해를 생각한 듯 지난 5일부터 해인사 선방이나 그 밑 상가지역 여관으로 미리 들어 와 머물면서 영결식 참석을 준비했다. 또 적잖은 신자들은 스님의 49제까지 묵고 가기 위해 준비해 왔다고도 했다.
몸이 불편한데도 성주에서 찾았다는 김갑주(79) 할머니는 눈물로 합장하면서 "큰스님 말씀 덕분에 이 나이 되도록 살았고 이제 여한이 없다"며 다비식장을 떠날 줄 몰랐다. 김 할머니는 혜암스님과 비슷한 나이로 40대 후반 이후 해인사에서 불공을 올려 오면서 혜암스님과 무려 32년간이나 연을 쌓아 마치 친구처럼 살아왔다고 했다.
큰절에 의지해 절밥을 먹어 온지 무려 48년 됐다는 이행락(82, 가야면 치인리) 할머니의 합장도 유달랐다. 할머니는 스님의 법구(시신) 행렬이 앞을 지나가자 꼬부라진 허리로 땅에 엎드려 참배했다.
0…다비식장엔 겨울인데도 세 줄기 무지개가 떠 신자들을 놀라게 했다. 한줄기씩 점차 증가한 무지개는 많은 사람들이 다비식장으로 운집하자 소방 헬기가 산불을 우려해 미리 뿌린 물 때문에 생긴 것으로 추정됐으나, 참석 신자들은 혜암 스님이 속인들에게 영험을 남기려는 것이라 생각하는 듯, '나무 관세음보살'을 염송했다.
0…다비식장에는 카메라맨들이 무려 1천200여명이나 몰려 한때 불편한 일이 생기기도 했다. 신문.방송 사진]기자 외에 전국에서 사진작가들이 앞다퉈 찾았다는 것.
이들때문에 다비식장으로 향하던 행렬이 잠시나마 정체되는 일이 생기자 장의위원회 스님들이 항의를 하기도 했으나, 스님의 행적을 기록하는데 불가피한 일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촬영 문제가 자연스레 해소됐다.
0…그러나 올해 각종 선거가 닥친 탓인듯 정치인들의 행각을 두고는 원망도 없잖았다. 정당들에서 보낸 조화.조전이 잇따른 것은 물론 행사에도 많은 정치인들이 많이 참석하면서 조사 순서와 자리를 놓고도 눈치작전이 벌어졌다는 것. 이들은 그러나 행사가 끝나자 잽싸게 빠져 나가 마치 선거 유세판 같았다는 불평도 나왔다.
특히 해인사 입구인 가야면 야천리 삼거리에 '환영 한광옥 대표 합천 방문'이라는 현수막이 혜암스님 입적을 알리는 현수막을 가리며 나붙자 스님.신자 등이 "도대체 조문 오는 거냐 선거운동 하러 오는 거냐"고 장의위에 항의, 철거를 요구하기도 했다.
0…그러나 해인사 밑 상가지역 식당.숙박업계는 손님이 밀리자 오랜만에 즐거운 분위기였다. 큰스님 열반이 안타깝지만 며칠 사이 방이 모자랄 정도로 투숙객이 늘었기 때문.
한 업주는 "스님은 속인들에게 공양 그릇을 채워주고 가셨다"며, "스님 말씀대로 결코 밥 그릇이나 축내는 일은 않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0…1994년 성철스님 열반 때 발생했던 교통 혼잡 재발 방지에 바짝 신경을 곤두 세워 대책본부까지 운영했던 경찰은 행사가 순조롭게 마무리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주차장 확보, 차량 분산, 24시간 비상근무 등이 유효했으나, 한편에선 "큰스님 공덕으로 날씨가 따뜻했던 것이 큰 힘이 됐다"고 공을 돌리기도 했다.
합천.정광효기자 khje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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