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DJ의 마당쇠들

정부가 부패특별수사검찰청을 만들겠다고 한다.게이트 비리와 리스트 부패 얘기로 지쳐있는 국민들에게 던져준 새해의 희망찬 연두회견 선물치고는 아닌 밤중의 홍두깨 같은 살벌한 선물이다.

경찰청, 국세청, 국정원, 검찰청에다 특별검사까지 두고도 모자라 '특별'이니 '부패' '수사'같은 서슬퍼런 수식어를 덧붙인 사정기관을 만들어야만 잡아넣을 수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더 남아있다는 것인지 아니면 기존 사정기관들은 모두가 허수아비 조직으로 내치는 공권력의 자포자기인지 어리둥절하다.

아라비안 나이트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비리들의 행태를 살펴보면 결코 이름이 거창하고 무서운 사정기관이 없거나 모자라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비리가 경찰이 알아내면 국정원이 덮어주고 검찰이 손대면 대검이나 청와대가 뒤를 봐주는 식으로 사정기관끼리 뒤엉켜 터진 비리들이었음에도 포청천 뒤에 '특수'포청천을 세우고 다시 그 뒤에 '특별'포청천을 세우면 비리가 없어질거라는 식이다.비리와 부패의 원인 진단에서 근본적으로 오진(誤診)하고 있다.

현정권의 잇단 비리.부패의 근본 병인(病因)은 사정기관 부족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DJ측근 중 검증이 덜된 소수 '마당쇠'들의 과분한 인사중용(重用)과 자긍심 상실이 그 원인의 하나였다.

야당시절 별볼일 없는 주인과 수십년 배고픔을 같이하며 충성했던 가신과 측근들로서는 세상이 바뀌면서 뭔가 한자리 챙겨주기를 바라고 참봉자리 하나라도 차지하고나면 그까짓 쌀 한두섬 해먹는 비리쯤 눈감아 주거니 믿는 구석이 생길 수 있다.

옛주인은 주인대로 고생하며 따랐던 측근들의 사사로운 인정과 의리에 끌려 이리저리 자리 챙겨주다보면 검증 안된 마당쇠 수준의 측근에게까지 분에 넘치는 큰 감투를 씌워주게 된다.

정권 출범후 잇달아 최단명 장관과 청장 등이 줄줄이 낙마한 사례들이 그러한 '마당쇠 챙겨주기'의 생생한 폐해였다. 소수 DJ 마당쇠들의 부끄러운 낙마는 제대로 발탁되고 능력을 갖춘 가신인재들의 심기를 괴롭혔겠지만 숱한 실정(失政)의 그늘뒤에는 일부 마당이나 쓸던 수준의 마당쇠들의 아마추어리즘 탓도 컸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런 불신에 찬 인심과 정서가 팽배한 상황에서 특수검찰청 하나 더 만드는 것으로서 게이트 비리 드라마의 마지막 회가 완벽히 끝나리라고 믿을 국민은 없다. 아직도 얼마나 더 터져나올지, 어쩌면 더 큰 액수와 더 높고 큰 감투를 쓴 또다른 마당쇠가 TV앞에 잡혀나올지 모른다는 의심과 함께 지금 것은 빙산의 일각일뿐, 잘못하면 정권이 끝난뒤에 본격적인 게이트 시리즈가 시작될지도 모른다고 믿는 국민도 있을 것이다.

빙산의 일각이란 의심은 국민들의 심사가 비뚤어져서 아니라 반복이 심어준 확신에서 비롯한 것이다.

더 강하고 더 무서운 사정기관을 만들수록 비리는 더 깊고 더 넓게 악취를 드러낼 뿐이다. 굶주린자가 더 많이 먹는다는 것도 부패의 기본생리다.

5년전 YS정권 마지막해 필자는 본란(本欄)에서 도쿠가와의 가신과 YS의 가신에 대해 이런 얘기를 쓴 적이 있었다.

-가난하고 힘없는 주군 도쿠가와에게 충성을 다했던 가신들은 이에야스가 대권을 잡은 뒤 극소수 출중한 가신 외에는 권력주변에 남아 측근 공신임을 빙자해 영화를 누리지 않고 낙향, 미카와 무사의 정신으로 자긍심을 지키며 배고픔을 참았다.

그러한 가신정신이 도쿠가와 막부의 300년 집권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 됐던 것이다. 그러나 YS의 일부 부패 가신들은 주인의 집권후 민주투사의 정신을 벗어던지고 한보비리라는 쓰레기더미속에 빠졌다. 그래서 차기 대선(98년)에는 배고픔보다 자긍심을 소중히 하는 정권을 뽑자-는 이야기였다.

5년전 그런 바람에도 불구하고 DJ정권 역시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국민의 정부라는 자긍심을 버린 일부 마당쇠들로 인해 재집권의 꿈을 접어야 할 위기 앞에 섰다. 그리고 주군 DJ는 부패특별수사검찰청이란 또하나의 칼을 만들어 못난 마당쇠가 더이상 나오지 못하게 측근쪽을 겨누고 있어야 하는 곤혹한 지경에 빠져있다.

김정길 본사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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