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데스크-희망의 이름으로

목축과 탱고, 축구의 나라였던 아르헨티나. 2차대전 이전만 해도 세계 5대 부국에 꼽혔고 그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남미의 파리로 불렸으며, 국토의5분의 1을 차지하는 초원지대 팜파스로 남미의 빵바구니라는 애칭을 가졌던 나라.

그 이름조차 멋스럽고 풍요롭던 아르헨티나가 지금 빈사 상태에 처해있다. 반세기전, 밤을 새는 탱고 리듬 속에 한껏 부를 구가하던 아르헨티나가 어느새 세계 3대 외채국에 국민의 절반 이상이 절대 빈곤층인 가난뱅이 나라로 전락했다.

99년 실각한 메넴정권까지 지난 43년간 19번 정권이 바뀌었고, 메넴 이후 현 에두아르도 두알데 대통령까지 모라토리엄 선언을 전후로 열하루 동안 무려 4명의 (임시)대통령이 바뀌는 미증유의 사태도 발생했다.현 경제위기는 시한폭탄과도 같아서 빨리 적절한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나라전체가 결단날 판이다.

부패가 낳은 아르헨티나의 재앙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오늘은 예고된 재앙이다. 실타래처럼 뒤엉킨 총체적 난국의 한가운데엔 수십년 쌓이고 쌓인 부정부패의 악취가 진동하고 있다. 후안 도밍고 페론 대통령시절, 자신의 지지기반인 노동자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과도한 노동자 우대정책 등 민중인기주의에만 집착하다 국고를 텅텅 비워버렸다. 게다가 페론은 빈민굴 사생아 출신으로 두번 째 아내인 에바 페론을 부통령으로 앉히려 했으나 에바가 암으로 죽게돼 뜻을 이루지 못했다. 훗날 대통령에 재선된 페론도 취임 10개월만에 죽었다.

그러나 인기주의로 나라를 멍들게 했던 페론의 망령은 무능한 세번째 아내 이사벨 페론을 자신의 후계자로 세움으로써 아르헨티나를 더욱 사지로 몰아붙였다. 또 메넴 전 대통령은 또 어떠했던가. 89년 취임 이후 11년간 아르헨티나를 통치했던 그는 국유기업의 민영화과정에서 엄청난 국부(國富)를 도둑질한데다 지난해 6월엔 무기밀매사건 은폐의혹으로 법의 심판대에 올랐으나 대법원이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죄를 선언, 재혼한 미스 칠레 출신의 미녀 아내와 멋진(?)노후를 즐기며 호시탐탐 재집권의 야욕을 감추지 않고 있다.

지금의 경제위기, 사회혼란은 오랜세월 이토록 썩어빠진 지도자들에 이끌려온 아르헨티나의 사필귀정(事必歸正)인 셈이다. 메넴의 부정을 파헤치고 있는 모네르 산스 변호사는 "'오늘은 내가 널 봐줄테니 내일은 네가 날 봐줘'가 유행하고 있다"며 개탄했다.

국민들은 "정치인들은 모두 다 도둑놈들"이라며 "내년 대선에서는 도둑질을 덜 하는 정당에 표를 던지겠다"고 말할 정도이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아르헨티나의 가장 큰 불행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금만 더 참으면 우린다시 잘 살 수 있다"며 희망찬 청사진을 보여줄 리더가 없다.

인생의 가파른 고갯길을 허덕허덕 힘겹게 오르는 사람도 고개너머의 행복을 기대하기에 당장의 고초를 이겨낸다. 그러나 바라볼 꿈이 더이상 없을때 사람들은 무너져내린다. 그러기에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내일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게이트 공화국' 한국 타산지석 삼아야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그가 위대한 까닭은 내일이 없는 사람들에게 푸른 꿈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저에겐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로 시작되는 그의 워싱턴 평화행진(1963년 8월 23일) 연설은 사후 4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전세계의 삶에 지친 사람들 가슴에 희망의 불씨를 지펴주고 있다.

지난 몇년간 우리도 참으로 힘겨운 시간들을 보내왔다. 하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에 주저앉지 않았다. 이제 세계인들은 다시 한국의 빠른 IMF 탈출을 경이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올 하반기부터는 경제도본격적인 활력을 되찾을 전망이라 한다.

그러나 2002년의 태양이 뜬지도 한참 지났지만 '게이트'로 날이 밝고 '게이트'로 날이 저무는 것은 여전하다. 정말이지 검찰청 포토라인에서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태연을 가장하는 무리들을 보는 것이 역겹기만 하다. 그 명예만으로도평생 감사하고 배부를 사람들이 왜그리도 헛욕심을 내나.

독일 뮌헨 근처 다하우마을에 있는 나치강제수용소 복원 전시관 출구 위에는 이런 내용의 글이 쓰여져 있다 한다.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 사람은 그 과거를 다시 경험하도록 단죄받는다'. 새해초부터 우리사회는 이런저론 흠집들로 얼룩지고 있지만 그래도 마틴 루터 킹의 이 말을 믿고 싶다. '이 세상에서 이루어진모든 것은 희망이 만든 것이다'라는 말을.

전경옥(특집기획부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