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성서.논어 비교 동.서 조화 시도

성서와 논어, 얼핏 함께 다룰 수 없을 것 같은 책이다. 우리의 정신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예수와 공자라고 하지만, 이들을 서로 비교하기란 너무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잘못 다루다간 신성모독이 되거나 '종교 혼합주의'라는 비판에 부닥칠 수밖에 없기 때문.

'논어 옆에 성서놓고, 성서 옆에 논어놓고'(성서와 함께 펴냄)는 두개 경전 사이의 새로운 해석과 대화를 시도,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이다.

저자인 최기섭(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신부와 동양철학자 김형기씨는 "동양문화 속에 살아왔던 역사적 삶을 지닌 채, 서구 그리스도교 문화를 수용한 우리에게 '동서조화'는 시대적 요청"이라고 집필의도를 밝혔다.

다소 딱딱한 책인 것처럼 느낄 수 있지만, 쉬운 말로 흥미로운 분야를 다루고 있어 한번쯤 읽어볼 만 하다.

▨요한복음1장: 맨 처음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중략) 그 빛이 세상에 오시어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다.

학이(學而)제1절: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배우고 그것을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중략)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는다면 군자가 아니겠는가요한1장은 인류역사에 하느님이 결정적으로 개입하기로 했다는 놀라운 선언으로 시작된다.

우리의 새로운 시작은 위로부터 빛과 생명으로 오신 그분을 맞아들일때 비로소 가능하고, 모든 은총과 진리는 그분에게서 비롯된다는 것을 인정할때 올바른 방향성을 지니게 된다.

논어 학이편은 인간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배움(學)이란 수천년의 역사를 통해 드러난 참삶의 지혜를 찾고 인간 완성의 방법을 탐구하기 위한 수단인 셈이다.

성서와 논어가 제시하는 길은 달라 보이지만, 그것의 접점은 존재한다. 하나는 위로부터, 하나는 아래로부터 출발하나 두 방향은 모두 인간 안에서 만나기 때문이다. 성서와 논어의 위대성이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마태오복음22절: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온 마음으로, 온 영혼으로, 온 정신으로 네 하느님이신 주님을 사랑하라" (중략)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

이인(里仁)제5절: 선생께서 말씀하시길 "군자가 인(仁)을 버리면 어찌 그 이름을 일컬을 수 있으리오. 군자는 밥 먹을 동안에도 인에서 어긋남이 없어야 하는 것이니…(중략)"

예수가 전하는 진리는 사랑이고, 공자의 인(仁)도 '사람을 사랑하는 것(愛人)'으로 둘다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방법론에서는 예수는 '온 마음과 영혼과 정신으로 사랑하라'는 것이고, 공자는 '갑자기 황급한 일을 당했을 때에도 인(仁)안에 있어야 하며 넘어지는 순간에도 인(仁)안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사랑과 인이 우리의 삶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는 것도 비슷하다. 그리스도교의 사랑과 유교의 인의 거리는 멀지 않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는 하는 측면에서 두 사람의 가르침은 한 자리에 있지 않은가.

▨마르꼬복음7절: "모두들 듣고 깨달으시오.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서 사람을 더럽힐 수 있는 것이란 없습니다. 사람한테서 나오는 것이야 말로 사람을 더럽힙니다"안연(顔淵)제1절: "인을 실천하는 것은 나에게 달린 것이지, 남에게 달린 일이겠느냐"

성서에서는 '사랑을 어떻게 실천해야 할까'에 대한 답을 '나와 남의 관계'속에서 찾으라고 가르친다. 사랑을 실현하는 열쇠는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공자는 인의 구체적 실천에 대한 자공의 질문에 '네가 하고자 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는 답변을 했다. 결국 인을 실천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노력여하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성서와 논어는 똑같이 '남이 아니라, 내가 문제다'라는 인간관계의 보편적인 진리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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