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TV 다시보기-SBS 여인천하

텔레비전이라는 기기(器機)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전파라는 수단을 써서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정한 시간 동안특정한 내용을 화면에다 내쏜다.

텔레비전 보는 데 재미가 든 우리는 별다른 생각 없이 일상적으로 이 상자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어쩌면 일상생활에 찌든 나머지 손쉬운 바보상자 속으로의 도피를 선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텔레비전을 켜는 일은 세상으로 향한 창을 여는 일과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

텔레비전이 세상의 모든 것을 비춰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속 어떤 프로그램이란 '시청자들이 이러이러하게 받아들여주었으면 좋겠다'고하는 의도를 품은 제작물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TV 프로그램들을 다시 보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면, 최근 인구에 회자되는 SBS의월화드라마 '여인천하'를 보는 방법 역시 다시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등장인물의 대사마다 넘쳐나는 살벌한어휘와 여인네의 독기 서린 얼굴, 이기적인 공신들의 음험한 표정을 주목해야 한다.

정난정(강수연 분)이, 적서(嫡庶)의 가혹한 구별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고 세상을 농단하고자 하는 야망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부터가 시청자들의 정서에 큰 영향을 준다.

여러 등장인물의 입을통해 언급되는 '살아남지 못하리라'류(類)의 음산한 대사와 어두운 결의에 찬 얼굴 표정은 그 빈도가 지나치다. 중종 시대 이른바 반정공신들이란 밤낮 정적이나 제거할 궁리 이외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한심한 존재요,뇌물 문서에 자신의 이름이 올라가 있는 것을 보고도 이를 능청스레 부정하는 거짓말쟁이들로 묘사된다.

작가는 스토리 전개를 위한 꼭 필요한 말만을 엮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은연중 현실에 투사되지나않을까 염려가 된다. 공전(空前)의 시청률을 보이는 프로그램인 만큼 시청자들이 자신도 모르게 그런 드라마 같은역할로 빠져들 우려가 없지 않은 게 사실이다.

미디어모니터회 최영자 glsarang@ke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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