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룡호 발표회를 마치고 도예가 허지엔씨는 기자와 가이드 김선생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백룡호가 조어대에 영구보존 되기전, 임시보관중인 실물을 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딩산 교외 고급주택가에 자리한 허지엔의 집에 도착하자 초로의 그의 부친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의 아버지 허팅자오 선생은 이싱자사 제1공장 공장장을 은퇴하고 왕성한 개인작품 활동을 하는 고급공예사였다. 허씨 부자는 일행이 백룡호를 자세히 볼 수 있도록 세심한 준비를 아끼지 않았다.
백룡호는 이싱의 정신을 표현했다는 그들의 주장에 걸맞은 수작이었다. 섬세하면서도 힘찬 모습의 용머리와 몸체부분을 운룡(雲龍)으로 묘사한 문양은 장인들의 자부심이 한껏 배어났다. 또한 뒷면에 '국운융성'을 기원한 글씨도 힘찬 필치로 격을 한층 돋보이게 했다.
백룡호 감상을 마치고 차를 한잔하는 동안 허팅자오 선생에게 이싱 자사호를 만드는 기법을 직접 한번 보여줄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김 선생은 원로 도예가에게 제작실연을 해달라는 것은 무리한 부탁이라며 곤혹스러워 하며 어렵게 운을 뗐다. 허 선생은 흔쾌히 보여주겠다며 아들에게 작업준비를 하도록 일렀다.
열평 남짓한 그의 작업실은 안방과 다름없이 아늑하고 잘 정돈되어 있었다. 작업대 앞에 앉은 허 선생은 주먹만한 흙을 떼어 내더니 방망이로 거침없이 두들기며 판형(板形)을 잡아 나갔다. 그리고는 마치 수술실 도구 마냥 가지런히 놓인 흙칼, 대나무 콤파스 등을 이용해 다관 형태를 잡고 뚜껑까지 만들어 냈다. 완벽한 기형의 자사호 다관이 하나 만들어 지는데는 채 20분도 걸리지 않았다.
한마디로 부드럽고 정확한 손놀림은 달인(達人)의 경지 그것이었다. "누구나 그릇의 형태는 잡을 수 있을지라도 한 치 어그러짐이 없는 완벽한 비례, 균형은 쉽지만은 않습니다. 이렇게 흙을 주물러도 하루 댓개의 다관을 만들기도 벅찹니다. 뚜껑 손잡이를 만들고, 주둥이를 붙이고, 문양을 새기고…모든 공정이 손과 이 원시적인 도구들로 이루어지니까요".
허 선생의 말마따나 단지 '원시적 도구'들로만으로 수백년째 완벽한 다관을 만들어내는 그들만의 장인정신은 결코 예사롭지 않았다. 일본의 도예가 자로 잰 듯 정확하다지만 끊임없는 숙련으로 빚어내는 자사호만큼은 정교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바로 중국이 갖는 '살아있는 전통의 힘'이자 자부심이란 확신이 섰다.
지금까지는 곳곳에서 중국의 박제되지 않은 전통의 힘을 느꼈다. 과연 현대도자에서도 그 전통들이 그대로 유습될 지 궁금했다. 때문에 허팅자오 선생 집을 나서며 현지 안내인에게 산업도자기를 하는 곳이 있으면 안내해 줄 것을 부탁했다.
몇차례 전화교섭을 하던 안내인은 차를 몰아 딩산 외곽지 들판 가운데 있는 공장단지로 일행을 안내했다. 2천여평 규모의 아담한 '상예술도자유한공사(祥藝術陶瓷有限公司)'의 나지막한 굴뚝 위로는 시커먼 연기가 쏟아져 나왔다. 공장 부사장의 안내에 따라 먼저 가마 있는 곳으로 갔다. 두 기(基)의 대형가스가마 중 한 기는 불을 지피고 있으며 한 기에서는 막 구워져 나온 그릇들을 꺼내고 있었다.
공장 바닥에 어지럽게 널린 그릇들을 하나씩 들어 보니 대부분 석고 형틀에서 찍어낸 '제품'들이다. 기물은 물컵과, 재떨이 등 생활용품인데 하나같이 유약이 조잡하고 형태도 중국적 용도에 맞춰줘 신통찮아 보였다.
부사장은 다시 성형, 조각 작업장으로 안내했다. 성형 작업장에는 서너명의 인부들이 항아리 종류를 물레로 돌리고 있었는데, 설명에 따르면 주문받은 기물을 만들거나 견본품을 주로 만든다고 했다. 한쪽 옆의 조각실에는 여직공 대여섯명이 앉아 자사호 조각을 하고 있었는데 직접 문양을 새기기보다 형틀로 찍어낸 조각들을 교묘히 접착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인해전술, 즉 값싼 노동력으로 만든 제품을 헐값에 다량판매 한다는 경영전략이 엿보였다.
부사장이 사장실로 일행을 안내하자 40대 중반 이지적 풍모의 거밍상(葛明祥)사장은 우선 사장실에 딸린 전시실을 돌아볼 것을 권했다. 그곳에는 다소 창작성이 가미된 반수공의 제품들이 진열되었는데 특히 눈에 띈 것은 한국의 분청사기와 비슷한 맛을 내는 다기세트였다.
"이 다기세트는 한국 다기세트와 아주 유사한데요". "맞습니다. 이 작품은 아직 완성단계의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곧 이 보다 더 색감과 질감이 뛰어난 작품이 나올 겁니다. 이 작품들은 한국 시장을 겨냥한 것들입니다. 지금 유약과 소성 등 모든 공정에 대한 실험을 마친 상태입니다".
거 사장은 치과의사 출신의 인텔리 사업가로 5년전부터 의사생활을 접고 도자기 산업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그는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입수하고 일본의 유수 도자기 공장들을 견학한 후 나름대로 흙과 유약 등을 연구하여 이젠 과학화 된 도자산업의 선두주자임을 자부한다는 것이었다.
"그 작품의 흙은 일본으로부터 수입한 것입니다. 일본은 그 흙을 한국에서 수입해서 가공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저는 그 가공한 흙 8t을 다시 수입했습니다. 그래서 나름의 유약을 개발했고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작품을 내놓을 것입니다. 물론 유약이나 소성에서 어려움이 있었지만 기술적 문제에 대해 일본 업체로부터 자문을 받아 별 문제없이 해오고 있습니다".
작품 가운데는 한국의 한 중견작가가 특허까지 출원한 물받침이 설치된 함지박 형태의 찻상이 있었다. 작품의 발상이 우연 치고는 너무도 유사하다 싶어 한국에도 이런 유형의 찻상이 있다고 넌지시 물어봤다. 거 사장은 그런 형태의 찻상은 공부차(工夫茶)에서 유래했다고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
언제까지 세계 도자기의 원류라는 자긍심으로 전통에만 집착하리라고만 생각했던 중국 도자기가 이미 한국 시장을 속속들이 꿰고앉아 시장 석권을 노린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취재 마지막 길에 우연히 들른 산업도자기 공장에서, 중국사람들은 그들이 간직해온 전통을 이 시대에 어떻게 적용시키는지 간파한 저력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확인받은 셈이었다.
"중국 도자기도 현대 들어 도조(陶彫)적 성격이 강해졌습니다. 그런 경향은 백자, 청자 등의 기본 형태 위에서 어떻게 다양한 표현을 할 것인가 고민의 폭도 그만큼 넓혀줬습니다. 이 고민들은 훗날 또하나 뛰어난 중국도자사의 밑바탕이 되기에 손색없을 것입니다". 중국 도자기의 현주소를 알려주는 중국예술학원 천숭씨엔(陳淞賢)교수의 한마디가 귓가를 맴돌았다.
전충진기자 cjje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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