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부라서 밤에는 나갈 수 없다"며 총리가 주최하는 외국국빈 만찬에 참석지 않고 부장관을 대리 참석시킨 다나카 마키코 전 일본 외상은 분명히 보통사람은 아니었다.
외상인 터수에 말 안듣는 인사과장을 갈아치우라고 사무차관과 관방장에게 요구, 방문을 닫아걸고 2시간이나 농성하는 그녀의 기행(奇行)에는 한다하는 고이즈미 총리도 입만 딱 벌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튀는 행동은 지난해 8월의 군마(群馬)현 참의원 선거 유세장에서 다시 유감없이 발휘됐다. 명색이 자민당의 지원유세자로 연단에 올라서자 기껏 한다는 소리가 "여기 후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르겠다"고 외면했으니 말이 되겠는가.
민망해진 요시카와 후보가 그나마 친근감을 표시하려고 팔을 만지자 "잘 알지도 못하는데 만지지 마라"고 고함을 쳐 유세장은 웃음바다가 됐고 후보는 보나마나 고배를 들었던 것이다.
이처럼 잇따르는 다나카의 기행을 두고 정치권이나 관료 사회에선 철부지쯤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국민들은 싫은 것을 "싫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다나카야말로 관료사회를 개혁할 수 있는 '신선한 충격'으로 인식하는듯 한 징후가 곳곳에서 보인다.
우선 지난 연말까지 80%대를 항상 유지하던 고이즈미 총리 지지율이 다나카 전 외상 경질 직후 34%대로 급락하더니 4일에는 49%(아사히 신문조사)선으로 간신히 오르긴 했지만 정정(政情)이 갑자기 불안해 지고 있는 게 문제다.
그동안 고이즈미의 인기에 눌려 찍소리 못하던 자민당내 반대파가 다나카 퇴진을 계기로 목청을 높이는 데다 제1야당인 민주당마저 비판 세력에 가세, 고이즈미는 날이 갈수록 사면초가의 위기에 몰리고 있는 것이다.
사실 누가봐도 다나카 전 외상의 집무 능력에는 문제가 있는 듯이 보인다. 그리고 이런 처지라면 고이즈미 아니라 누구인들 외상을 교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일본 국민들이 철부지 같은 다나카에게 이처럼 집착하는 것은 그녀의 개혁의지에 대한 믿음때문이 아닐까.
도덕적 해이와 보신주의가 팽배한 관료 사회를 개혁시키겠다는 한 여성의원의 '깨끗한 도전'에 대한 격려의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음직 하다. 아무튼 고이즈미로부터 퇴임 통고를 받는 순간 두말없이 "그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고 당당히 말한 다나카의 '앗싸리'한 자세야말로 구질구질한 우리 정객들이 한번쯤 귀담아들을 대목이 아닌지 모르겠다.
김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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