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어느 야당 정치인이 시중에 나돌고 있는 '김대중 대통령의 하루'라는 우스갯소리를 언론에 소개했다.
시중에 나도는 내용과는 조금 다르긴해도 대체로 다음과 같다. 아침에 일어나면 김정일로부터 받은 풍산개 밥 주고, 노벨상 메달 닦은 후, 김정일 전화를 기다리면서, 이희호 여사 건강도 묻고는, 실세인 ㄱ씨에게 오늘은 얼마를 먹었나 감시전화 하고난 후 다시 ㅂ씨에게 오늘은 어느 여자를 건드렸나 경고전화 하기라는 것이다.
이 우스갯소리의 초점은 처음에는 대통령이었으나 지금은 단연 ㄱ씨로 바뀌었다. 총체적 부패, 게이트 공화국, 방부제마저 썩은 나라 등으로 자탄하고 있는 부패 시리즈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먹었다는 소리만 구름처럼 무성하지 더 이상 발전(?)은 되지 않고 있다.
민심이 천심이라 했거늘 이번에는 아닌가. 아니면 ㄱ씨란 한 개인을 칭하는 1인칭이 아니라 '잘먹고 잘사는' 패거리들에 대한 총칭일지도 모르겠다.
국민의 정부 출범이후 비리의혹 관련자는 장·차관급 14명 등 모두 39명이라는 것이다. 역대 어느 정권에서 이런 일이 있었는가. '패거리 인사 때문'이든, '오래 굶었기 때문'이든, '전환기의 공백 때문'이든 어떻든 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
그런데 정말 걱정해야 하는 것은 부패란 바로 나라를 망친다는 데 있다. 필리핀이 그랬고 우리나라의 IMF경제위기가 그랬다. IBRD(세계은행)보고서에 의하면 필리핀의 부패비용은 77~97년 사이 20년 동안 480억달러 였다. 그런데 97년 경제위기 때 이 나라의 부채규모가 406억달러였다.
이러니 망하지 않고 배길 수 없었던 것. 아시아 2위에서 꼴찌다음으로 추락한 것이다.이런 IMF보고서도 있다. 국가의 투명성 지수를 2단계만 끌어올려도 투자율은 4%, 경제성장률은 0.5%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일도 있다. 우리나라는 인터넷 이용자 수에서 세계 제5위(2001년 기준- 한국전산원)로 선진국이다. 그런데 인터넷을 이용한 소위 e비즈니스는 세계 제 21위 (이코노미스트의 경제연구소)로 중진국 수준이다. 자료 노출을 꺼리는 투명성 부족의 사회 분위기 때문이란다.
이렇게 부패는 바로 국가경쟁력과 직결되고 있는 오늘이다. 이제 부패와의 전쟁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차원으로 격상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다.
부패를 없애려면 지도자도 국민도 같이 잘 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래도 지도자의 몫이 더 크다. 장개석 중국총통이 부패를 한 며느리에게 보석상자에 넣어 보낸 권총선물 일화라든지 뇌물죄에 몰린 싱가포르 장관의 권총 자살 사건 등은 부패 앞에서는 지도자의 의지가 얼마나 냉혹하고 굳었는지를 말해주는 사건들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통령은 어떤가. 비록 연두기자 회견에서 "제가 선두에 서서 비리척결에 앞장서겠습니다"고 했지만 이를 믿는 국민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우선은 지난 개각시 최경원 법무장관을 경질한 것이나 검찰인사에서 보여준 밀고 당기기가 그렇다.
그리고 '인정(人情)'이 필요이상 많은 것도 그렇다. 대통령의 아들이 국회의원에 나선 것이나 그이 장인이 광복회장으로 봉직하는 것 등 소위 네포티즘(족벌주의)이 그렇고, 그리고 호남편중인사가 말해주는 소위 크로니이즘(연고주의)과 지역주의가 그렇다. 처조카 이형택 게이트가 이유없이 일어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아직은 늦지 않았다고 본다. 비록 정권말기라도 해도 지도자가 결연한 의지를 보여 국민에게 감동만 준다면 그래도 효과는 있다. 오늘과 같이 민주화된 사회에서 옛날의 장개석의 권총처럼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여러 결단 중에서 가장 손쉽고, 확실하고, 국민이 선뜻 납득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아무래도 아태재단을 국가에 헌납하는 일이 아닐까. 지도자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의문의 안개를 모두 제거하는 일이 예로부터 존경받는 동양적 지도자 모습이 아니었던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이다.
솔직히 말해 국민이 아태재단을 보는 시각은 결코 곱지 않다. "그토록 오랜 야당생활을 하면서 도대체 무슨 돈이 있어 그 엄청난 재단을 설립하고 또 운영하는가"하는 의문이다.
야당이 제기하듯 정치자금 조성 창구라는 비판이 있는 것도 사실이 아닌가. 사실 국민은 아태재단이 뭐하는 곳인지 정확히 모르고 있다. 모르면서도 왜 헌납을 말하는가. 그기에는'민심의 논리'가 있다. 며칠 전 MBC 방송국 대선 예비주자 토론회에서 "권노갑씨가 뭘 잘못했는데 퇴진 요구를 했느냐"는 질문에 정동영 의원은 "민심이 그 증거다"고 함축적인 표현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민심이 천심이 아닌가.
인도 속담에 북소리를 잡으려면 북을 찢으면 된다고 했다. 외교부에 등록된 순수연구단체라고 변명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통째로 헌납해 버리면 모든 소리도 없어질 것 아닌가. 그러면 국민으로부터는 감동을 얻을 수 있어 부패척결에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서상호 본사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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