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탈간판 시대(?)

독일에는 세칭 일류 대학이 없고, 일류 학과만 있다고 한다. 대학 순위도 학부 단위의 특성화로 결정되며, 대학 단위의 서열화는 찾아 볼 수가 없다.

이 때문에 대학 지망생 역시 우리처럼 본인의 적성이나 취미와는 관계없이 성적에 따라 학과를 선택하고 일류 대학에 들어가는 게 아니다.

과거 전통과 역사가 오랜 이른바 명문 대학들이 되레 우수 대학 평점에서 하위로 처지고 있는 현상까지 보인다고 한다. 다만 경제학과·경영학과는 만하임대와 뮌헨대가 좋고, 법학과는 본대가 우수하다는 식이다.

우리나라에도 과거에는 어떤 대학은 무슨 학과가 좋고, 전반적으로는 보면 일류 대학이지만 어느 단과대학과 어떤 학과는 별로라는 식으로 대학마다 특성이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대학 입시라는 '단 한번의 승부'가 한 인간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고 직장을 구할 때나 배우자 선택에까지 우선 조건이 됐다.한 줄 세우기식 대학 서열화, 학벌주의와 학벌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제 세상이 달라지는 걸까. 명문 대학의 우수학생 독과점과 대학 서열화가 깨지는 추세다. 올해 서울대 등 상위권 대학 비인기 학과와 중위권 대학의 의대·치대·한의대 예과 등 인기 학과에 중복 합격한 학생들의 명문대 포기가 크게 늘었으며, 이 같은 경향은 계속 확산될 조짐이다.

심지어 4년제 대학보다 전문대학 실용학과를 선택하는 경우마저 없지 않다. 신세대들의 가치관이 '명분'보다 '실리', '간판'보다는 '취업'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급변하고 있기 때문일까.

뿐만이 아니다. 30, 40대 직장인들이 다시 입시 준비를 한 뒤 의사나 법관으로 재출발해 평생직장을 보장받으려는 늦깎이 대입생들도 부쩍 늘었다.

서울대 조선공학과 출신으로 대우조선의 설계부장까지 지낸 43세의 직장인이 경희대 한의예과에, 서울대 기계공학과와 대학원 출신이며 한국항공우주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이 서울대 치의예과에, 44세의 세무사가 성균관대 경영학부에, 35세 전 직장인이 서강대 법학과에 합격한 것은 그 예들이다.

이는 실용학문 강세와 전문성을 요구하는 시대가 오고,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나 홀로 설 수 있는' 실력과 자격증이 '필수'가 되는 시대상의 반영으로 봐야 한다. 하지만 서울대의 일부 단과대학들이 사상 처음으로 추가 모집을 하는 사태도 예사로운 일은 아니다.

특히 이공계 기피 현상은 결코 좌시해서는 안 될 일이다. 심각한 국가 문제인 이공계 기피 현상을 정부도 이제야 인식하고 지원 때는 가산점 권장 방안까지 검토 중이라지만, 고급 산업기술 인력 확보를 위한 국가 차원의 실효성 있는 대책은 반드시 나와야 하리라고 본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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