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하는 오후

형님, 한심한 짓만 골라 저지르며 남의 덕에 밥먹고 사는 저는

속 편한 소리만 탕탕합니다

사람 사는 게 어디 돈만 가지고 되는 거냐고

떳떳이 살아가다 보면

밥은 굶지 않게 되어 있다고

배부른 소리만 씨도 안 먹게 지껄이고 앉았습니다

임마, 넌 이새끼 고생을 덜해서 몰라

그러며 내게 말씀 합니다

집구석 와장창 거덜나고

형님과 나 대전으로 유학 나와

밭둑의 쑥 뜯어 국 끓여먹고

눌어붙은 엊저녁 국수가락 몇 건져 입맛 다시며

학교길 시오리 걸어다니던

중고등학교 자취시절 말씀합니다

웬수같지만 하나뿐인 동생인지라

내 수업료 먼저주고 형님은 등교정지 먹고

속 모르는 담임한테 뺨때기 얻어맞던 날은

분해서 분해서

독하게 참아온 눈물보가 터지더라는

그 시절 말씀합니다

가슴에 사무치는 그시절 얘기

꺼낼 적 마다 형님은 목이 메이고

나도 눈물 핑 돌아

에유, 그만 됐어유, 합니다

-김사인 '형님전 상서'

민족의 대명절이라는 설이다. 흩어져 살고 있던 부모와 형제동기들이 오랜만에 모일 것이다. 이야기 꽃을 피우게 될 그들의 가슴 속에는 갖가지 사연이 있다.

이 시도 그런 사연 가운데 하나이다.따뜻하고 해학이 있지만, 가슴 한 켠을 뭉클하게 만드는 힘도 있다.

한마디로 사람 사는 냄새가 묻어 있다.산업화 세대의 '전형'을 형상화한 것이 이 시의 최대 미덕이다.

김용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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