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수출길이 뚫리면서 사과.배 등 과일 농업의 새로운 변화가 주목되고 있다. 작년 이맘 때 쯤 값이 폭락해 폐기처분하거나 북한으로 보내야 할 만큼 수익성이 떨어짐으로써 지난 10여년 간 과수원 면적이 절반으로 감소하는 등 위기를 맞았던 사과는 이제 없어서 수출을 못할 정도이기 때문.
게다가 쌀 농사 위기 때문에 대체 작목을 찾으려 고심하는 참이어서 농민들에겐 사과.배가 새로운 희망으로 보이기까지 할 정도. 들판의 현재 모습은 어떨까?
◇사과나무를 다시 심자!=농가 소득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던 쌀값이 하락한 뒤 농민들이 올들어 사과 쪽으로 잇따라 작목을 전환하거나 재배 면적을 늘리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 기관은 사과밭 감소세가 올해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 결과를 두고 다른 시각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영주 풍기읍 백1리 김기진씨는 지난해 3천평의 키낮은 사과 과수원을 만든데 이어 올해도 4천평을 추가로 조성할 예정이다. 장수면 성곡리 남호원(47)씨는 기존의 12년생 사과밭 1천500평 외에 올해 2천400평에 키 낮은 사과나무를 심을 예정이다.
3천700평에 과수농사를 짓다 10년 전 낙농업으로 전환해 젖소 50마리를 기르던 평은면 평은리 석사원(51)씨는 올해 사과로 농사를 전환해 3천600평에 과수원을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천 하리면 우곡리 권오창씨는 수지가 맞지 않는다며 1999년까지 사과밭을 모두 폐원한 뒤 고추.채소를 재배했으나 오는 봄엔 3천900평에 사과나무를 심기로 했다지난해 잎담배 3천평과 사과 2천400평을 재배했던 청송 파천면 옹점리 김형순(45)씨는 올해 잎담배를 포기하고 3천평에 새로 키낮은 사과나무를 심었다.
이런 움직임 때문에 청송지역 경우 사과밭 면적이 올해 50여ha 증가해 1천230ha에 이를 것이라고 군청 관계자는 전망했다. 청송의 사과밭은 재작년 1천774ha에서 작년엔 1천178ha로 줄었으나 소득은 256억1천800만원에서 308억8천400만원으로 되레 17%쯤 증가했다.
이런 추세와 관련해 경북농업기술원 김진수 과수담당은 "사과의 대만 수출 재개 등 여건 변화로 과수 면적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고, 이선형 기술보급과장은 "영농교육 때 과수분야 수강생이 증가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농촌경제연구원은 올해 사과 재배면적은 작년 2만6천328ha보다 2.7% 감소하고 경북지역 경우 작년 1만6천854ha보다 4.1%(691 ha) 줄 것으로 전망했다.
◇배값은 올랐지만 더 심기에는 "글쎄"=사과 못잖게 배 역시 지난해 하반기부터 좋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지만 경북 도내에서는 재배를 늘리거나 배로의 작목 전환 등 움직임은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
배 주산지인 영천 경우 금호읍.북안면.신녕면의 저온저장고에는 현재 재고가 거의 없다. 북안 배 영농조합 정재상(58) 고문은 "지난 설을 전후해 작년 추석 때보다 상자당 1만원 가량 오른 가격으로 팔렸다"면서, "북안면에 저장 중인 80t 중 60t은 설에 내다 팔았고 나머지는 수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고배 주산지인 금호읍 삼호리 저온저장고 보관분도 마찬가지. 삼호2리 이장이자 삼호배 작목반원인 김상섭(48)씨는 "작년 말부터 설과 월드컵 특수 등으로 수요가 많아져 이곳 200여 농가 보관 물량이 상인들에게 거의 팔렸다"고 했다.
황금배를 주로 생산하는 신녕면 역시 생산량 280여t 중 200여t을 캐나다.네덜란드.프랑스.인도네시아.필리핀 등으로 수출한 뒤 나머지는 국내에 시판, 재고가 없는 상태이다. 신녕 황금배 수출영농조합 이종도(59) 대표는 "이제 대만 수출길이 열려 황금배 수출이 늘어 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같이 좋은 여건에도 불구하고 경북 지역에서는 재배를 늘리거나 배로 작목을 전환하려는 움직임은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 배는 저장성에 한계가 있고 경북 지역 경우 여전히 사과 중심이어서 배 재배 면적은 전국의 17%에 그치는 특성 때문으로 보인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전국 배밭 면적은 작년 2만5천535ha에서 올해 또 2.3%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배 재배면적은 재작년 2만6천142ha로 피크를 이룬 뒤 감소하기 시작했었다.
◇묘목시장의 분위기=사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묘목업계도 작잖은 기대를 걸고, 일부 지역에서는 사과 묘목값이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청송에서는 지난해 7천원하던 키작은 M9 자근(自根) 대묘가 9천원에 거래되는 등 30% 가까이 오르고 회초리 묘목은 주당 3천원 오른 5천원에 거래되고 있다. 이에 군 농업기술센터는 사과묘목 16만 그루를 생산해 시중보다 주당 900원(M26)~1천200원(M9) 싸게 공급할 계획이다.
그러나 영주에서 묘목상을 하는 영생농원 오수석(57)씨는 "예천의 두 농가에서 벼 대신 1천평에 사과나무를 심겠다며 묘목을 주문한 바 있긴 하나 벼 대신 사과로 대폭 몰릴 것이란 예상과는 사정이 다르다"고 했다. 오씨는 또 "농업기술센터에서 M9를 공급해 주는 탓인지 예상만큼 수요가 없는데도 묘목업자는 많아져서 예년보다 수익성이 더 못하다"고 말했다.
전국 최대인 경산 묘목시장에도 아직 이렇다할 사과 묘목 특수는 일지 않고 있다고 한국과수묘목협회 경북지회 한재유 지회장은 전했다. 한 지회장은 "과거에는 전체 묘목 거래분의 80%가 사과였으나 요즘은 60%로 비중이 떨어졌다"며, "봄이 되면 사정이 달라질 가능성은 있다"고 예상했다.
전국 100여개 과수묘목 업체 모임인 한국과수묘목협회 박춘일 총무국장은 "사과묘목에 대한 수요가 많더라도 비회원 업체가 1천개가 넘어 가격이 덤핑됨으로써 값은 오르기 힘들 것"이라 내다봤다.
박 국장은 "작년에 회원업체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묘목 생산량의 20% 정도밖에 팔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사과묘목 수요가 늘더라도 공급량이 충분해 품귀현상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천.서종일기자 jiseo@imaeil.com
영주.김진만기자 fact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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