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지내고 있는 이질녀가 있는데 그 집에는 아들이 둘 있다. 큰 아이가 일곱 살이고 동생이 다섯 살, 정말 꽈리처럼 깨물고 싶은 귀여운 아이들이다. 그런데 둘째에게는 아주 고상한 취미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젖 만지는 일.
시도때도 없이 제 엄마 젖이나 외할머니 젖, 심지어 이모할머니인 집사람의 젖을 자주 주물럭거리는데 이 녀석이우리 집에 와서 자는 날이면 작은 소동이 벌어지곤 한다.
제 이모인 우리 딸들은 이 놈을 아주 귀여워하면서도 쉽게 몸을 내어주지 않는다. 그래서 몇 번 시도 하다가 안 되면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데 그러면 도리 없이 내가 받아 안고 내 젖을 내주지 않을 수 없다.
이 녀석도 남녀유별에대한 분별력이 분명한지라 내 것은 영 마뜩찮게 여긴다. 그래도 아무도 젖을 내주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빈약한내 젖을 -젖이라기보다 젖꼭지라고 해야 되겠지만- 조몰락거리며 놀다가 빈 젖통을 빨다가 한숨을 내쉬는 강아지처럼아쉬움을 달래기도 한다.
◈먹머루 눈망울에 비친 세상
사실 아이들의 상식을 벗어난 천진난만한 행위는 순간적이나마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다. 엊그제 일이다.설날 아침에 모처럼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을 걸어내려 왔는데 어떤 집 철문에 탁상용 캘린더 석 장이붙어 있었다. 들여다보니 '쉿! 조용히 하시오.
우리 집 고양이가 잠들었음'이라고 적혀 있는 게 아닌가. 비뚤배뚤 글씨체의 솜씨는 갓 한글을 익힌 먹머루 눈망울의 주인공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자기 집 고양이가 잠들었으니 세상이 모두 숨죽여야 한다는 발상. 그러니 그 엄중 경고문을 읽은 누군들 발꿈치로 계단을 내려오지 않을 수 있으랴.
아이들 동심의 세계가 즐거운 것은 타성에 젖은 고정관념을 벗기고 새로운 진실을 보여주는데 있다 하겠다.엉뚱한 상상력으로 펼쳐내는 그들의 기상천외한 발상과 발언은 우리에게 참을 수 없는 웃음을 선사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자아와 세계의 금이 그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나의 마음이 곧 너의 마음이요, 사물의 마음이다. 즉 미움과 시기와 경쟁의 마음이 아니라 사랑과 화해와 양보의 마음이라고 하겠다. 기실 이러한 자아의세계화라는 동일화의 원리는 서정시의 가장 기본이 된다고 할 것이다.
인류의 정신적 스승으로 추앙 받는 달라이 라마가 '행복론'에서 주장하고 있는 내용의 핵심도 여기에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느끼는 삶의 만족감이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인 만큼 자신의 마음 상태가 가장 중요하다고 하겠다. 그런데 평화롭고고요한 마음이 사랑과 자비심에 뿌리를 두고 있음은 비단 달라이 라마 뿐 아니라 모든 종교에서 한결같이 지적하는 바가 아니던가.
타인을 돕는 사람의 평온한 마음이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면역기능을 높여 준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었거니와 자비로운 마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접근하는 태도는 타인으로부터 따뜻하고 긍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킴으로써 불안감과 두려움, 외로움을 해소함으로써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
◈사랑과 화해와 양보가 가득
이러한 행복론의 실제적인 원리가 되는 것이 바로 감정이입의 방법이다. 즉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상대의 고통이나 어려움을 최대한 상상해보는 것, 이것이 바로 동일화의 원리이며 자비심을 갖도록 하는 구체적인 방법이라고 하겠다.
한낱 헝겊조각에 불과한 인형에도 눈물을 짓는 아이들은 이러한 원리를 제 타고난 성정으로 몸에 익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과연 '어린이는 어른의 스승'이 아닐 수 없으며, 진정한 의미에서의 '하눌님'이 아닐 수 없다. 임오년 설날 숫아침, 나는 이 스승이자 하눌님인 아이들이 엮어낸 행복론을 읽으면서 차갑고 시원한 샘물 한 두레박을 뒤집어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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