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산맥을 가다-(6)톈산 비단길을 찾아

작년 7월 10일 오후 8시50분. 인천국제공항을 뒤로 하고 23일간의 대장정에 오른 13명의 톈산탐사대(단장 이상시.대장 장봉완)에게는 가벼운 흥분과 긴장감을 넘어 비장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중앙아시아 이시크 쿨 호수 동쪽의 카자흐스탄의 북톈산에서부터 키르기스스탄, 중국 접경지역에 위치한 중앙 톈산의 고봉준령에 이르기까지 미지의 오지를 탐사하는 일정이 험난함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탐사대가 찾아 나선 톈산산맥은 또 고대 동서문명 교류의 파이프라인으로서 초원의 길이자 비단길로 불린 톈산남로와 톈산북로의 전설과 역사가 스며들어 있는 공간이라는 것이 대원들을 설레게 한 것이다.

더욱이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은 사회주의의 종주국이었던 옛 소련의 영토였다는 점도 ' 레드 콤플렉스'로부터 완전히 자유스럽지 못한 탐사대원들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비행기로 6시간을 날아 11일 새벽 3시께(카자흐스탄시간) 카자흐스탄의 남쪽 끝에 위치한 알마티시에 도착한 탐사대는 잠시 휴식을 취한 뒤 현지 가이드 조칸(29)과 통역인 옥산나(21)와 합류하고 이번 탐사의 출발점이 될 북톈산의 베스카라가이 마을로 향했다.

알마티시에서 베스카라가이마을까지의 이동거리 380km로 차를 타고 8시간을 달려야 되는 거리에 있었다. 탐사대는 옛 소련 군인들이 이용했던 군용트럭을 개조해 만든 러시아제 16인승 6WD(6륜구동) 버스를 타고 북톈산을 향해 동쪽으로 끝없이 뻗은 도로를 2시간 쯤 달려가자 '슈케친스카야평원'으로 불리는 반사막지대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도로양쪽의 아름드리 포플러나무와 밀, 담배, 해바라기, 옥수수 경작지는 동쪽으로 갈수록 사라지는 대신 기후는 건조해지면서 사막처럼 변해 짧고 메마른 풀만이 자라는 지대로 바뀌어갔다.

일부 탐사대원들은 갑작스럽게 변화된 고온건조한 기후로 인해 코를 풀면 바로 코피가 쏟아졌으며 차창밖으로 멀리 보이는 산에서는 건조한 날씨로 인해 자연발화된 산불이 보이기도 했다.

또 버스 밖 온도가 무려 43도까지 오를 정도로 햇빛이 너무 강해 피부가 조금만 노출되고 따끔거리는 등 국내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첫날부터 탐사대를 엄습했다. 이때 갑자기 달리던 버스가 엔진실에서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멈춰 섰다.

엔진의 냉각호스가 터지면서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어렵게 차량을 고쳐 이동을 계속했으나 잔 고장이 계속 발생한 덕분(?)에 미국의 그랜드 캐넌에 빗대 차린강이 흐르며 만들어 놓은 노란색의 협곡인 '옐로 캐넌'의 일몰 장관을 목격하기도 했다.

아울러 예기치 않은 차량의 고장으로 발이 묶인 탐사대는 날이 점점 어두워지자 창문도 없는 차안으로 몰아치는 추운 바람을 짧은 셔츠 한 장으로 견뎌야 했다. 결국 당초 예정보다 12시간이 초과된 20여 시간이나 지난 12일 오전 8시20분께 목적지인 제1캠프인 베스카라가이 마을에 도착해 앞으로 탐사일정이 미지의 속으로 빠져들 것임을 예고했다.

베스카라가이 계곡 2,300m 고지에 위치한 탐사대의 제1캠프는 꽃과 풀이 가득한 초원으로 바로 옆으로는 테게스강의 지류가 흐르고 멀리 완만한 산릉에는 여러 종의 야생화와 가문비나무숲, 그 위로 3,700m대의 회색 빛의 첨봉이 울타리를 두른 듯 이어져 있었다.

버스고장으로 밤새 시달린 탐사대는 이날 일정을 포기해 휴식을 취하며 인근의 유르트(Yurt.유목민들이 이동하기 편하게 가죽으로 만든 천막)를 방문, 유목민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보냈다.

특히 유목민들은 탐사대가 선물한 2002 한.일 월드컵 배지와 축구공을 받은 후부터는 이방인들의 출현에 긴장하던 모습은 금세 사라지고 무척 좋아했다. 13일 오전 탐사대는 유목민들의 배웅을 뒤로하며 테게스강 상류 지역에 있는 제2캠프를 향한 본격적인 탐사를 시작했다.

이름 모를 오색의 야생화가 가득 핀 초원과 빽빽하게 솟아 있는 가문비나무숲을 걸어서 지난 지 3시간. 테게스강이 일으키는 하얀 물보라와 우렁찬 물소리에 잠시 넋을 놓고 숨을 돌렸다.

그런데 테게스강 옆으로 빨간 통나무집 관리인으로 보이는 현지인이 사유지라 통행을 못 한다며 탐사대를 가로막았다. 난감해진 탐사대는 마침 출발하기 전 한국통신에서 빌려온 위성전화기를 이용해 토지주와 어렵게 통화를 해 허가를 얻어낸 후 이곳을 지나 해발 2,700m에 위치한 북톈산의 제2캠프에 도착했다.

차츰 고도가 높아지면서 일부 대원들에게 고산증세가 찾아왔고 호흡 곤란과 두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내일은 또 어떤 오지를 만날까 하는 설렘과 긴장감 속에 잠자리에 들었지만 텐트 천장을 두드리는 요란한 빗방울 소리는 이국의 정한을 더욱 깊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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