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진덕규칼럼-참 민주주의를 꽃피우자

한때 우리는 정신적으로 대단히 풍요했던 적이 있었다. 아주 간단한 사유체계가 지배했기 때문이다. 그 사유체계의 핵심에는 '민주화'가 있었다. 그때 민주화는 마치 만능의 신화와도 같았다.

그것만이루게 되면 모든 것은 저절로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이 팽배했다. 민주화만 되면 정치도 선진사회가 될 것이고, 경제도 균형 잡힌 시장체제로 재벌들의 끝없는 탐욕에서 벗어날 것으로 믿었다. 그뿐 아니다. 배분의 정의도 창조의 가치만큼이나 중시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리하여 민주화라는 말만으로 하루 종일 기분이 좋을 수 있었던 그러한 시대였다.

그리고 그 시절, 민주화는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선출하면 이룩된다는 믿음으로 통했다. 오랜 권위주의에 놓여 있었기에 국민참여제야 말로 민주주의의 본질로 여겨졌다.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거리는 연일열띤 젊은 시위대의 물결로 넘쳐났고, 생경한 구호를 주장하는 젊은 영웅들의 목소리는 하늘에 닿았다.

마침내대통령 직선제가 쟁취되었고, 대통령을 국민들이 뽑는 벅찬 감회도 맛보았다. 민주화를 주장하면서 평생을 몸바친 전업 정치인들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이제는 정말 민주주의가 이루어져 정의가 강물처럼 넘치고 풍요와 해방의 시대가 이루어질 그 순간만을 기다리면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물거품이었고 환상이었다. 풍요 대신에 실업자가 거리에 넘쳐났다. 오히려 부패는 지독한악취를 더 했고, 정의는 기껏해야 어느 한편의 주장으로만 종식되었다. 화해와 통합 대신에 분열과 갈등은 불신의 벽만을 더 한층 높이 쌓고 있다.

개혁은 혁명주의자들의 자기 보호색에 지나지 않았다. 결국 민주주의는 민주화라는 구호만으로는이룩될 수 없다는 것을, 그 구호로 정치권력을 잡으려는 인사들의 그 의도를 너무 많은 것을 지불한 뒤에야 겨우 알 수 있었다. 민주화는 민주주의로 가는 첫 출발이고, 진정한 민주주의는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이 민주주의적일 때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을 겨우 알게 되었다.

내 스스로 민주주의자가 되지 않는 한 절대로 민주주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그 엄연한 사실도절감하게 되었다. 내 스스로 그리고 우리 모두가 민주주의자로 자리잡을 때 비로소 민주주의가 이룩된다는 이 간단한 진리를 알기까지 우리들은 정말 너무 먼 길을 돌아온 셈이었다.

민주주의자로 살아가는 것 이 모든 것의 관건임을. 민주주의자로 산다는 것은 먼저 우리들의 일상에서 거짓말하지 않고 모든 것을 자기 책임으로 돌리는 절제와 연대임을. 내부터 먼저 법과질서를 지키고,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둘이 되는 합리적인 사회를 이룩할 때라야 비로소 가능해 진다는 것을.

이러한 삶을 이룩하기 위해 지도자들이 앞장서고, 그리고 그 선두에는 대통령이 자리잡을 때 비로소 모두가 민주주의자로거듭나는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세계적인 큰 상을 받아도 그것 자체가 민주주의자로 산다는 입증일 수는 없다.스스로를 "대통령님"이라고 부르게 하는 그 의식은 민주주의자와는 너무나 먼 거리에 서 있음을 말해 줄 뿐이다.

지도자도 대통령도 우리들 중의 한 사람이다. 어느 면에서 그들이 우리와 다르다면 그것은 책임의 무게에서, 성실함의터전에서, 그리고 거짓말하지 않는 순수함에서 그러해야 할 것이다. 이제 대통령을 비롯한 지도자들이 먼저 앞장서는민주주의적인 삶이 이룩될 때 비로소 참 민주주의도 열리게 될 것이다.

민주화라는 구호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적 삶의 일상성 그것이야말로 이 땅에 참 민주주의의 소담스러운 꽃을 피우는 텃밭이 될 것이다.

이화여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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