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의 라오다메야는 비극적인 열녀(烈女)다. 신혼 초기에 사랑하는 남편이 트로이 전쟁에 나가자 그리움을 이기지 못해 납으로 상(像)을 만들어 밤마다 이불 속에 품고 잤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신랑이 그 전쟁에서 전사해 눈물로 세월을 보내다 제우스신에게 단 3시간만이라도 만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신은 망령을 납상에 넣어 남편으로 변하게 했다. 그러나 아름답고 감미로운 3시간은 물처럼 지나갔다. 그녀는 스스로 가슴을 찔러 남편의 망령을 따랐다.
우리 역사 속엔 한국판 라오다메야가 수없이 많다. 다산(茶山)이 '너무 죽음을 수월하게 생각한다'고 꼬집을 정도로 전국에 산재해 있는 열녀정문(烈女旌門)들이 많다. 그런가 하면, 여자의 일방적 희생이나 정절(貞節)을 강요하던 유교사회에서도 남편의 순애보(殉愛譜)를 그린 얘기들마저 적지 않다. 하지만 오늘의 세태는 남편이나 처를 내모는 이혼이 만연하고 있다.
지난해 연말 우리나라 이혼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가운데 8위라는 통계가 나왔다. 1위인 미국보다는 낮지만 이탈리아의 5배이며, 일본.프랑스를 앞질렀다. 전국적으로 보면 2000년 한 해에 33만4천30쌍이 결혼, 11만9천882쌍이 이혼했으니 하루에도 329쌍이나 갈라선 꼴이다. 3쌍이 결혼할 때 1쌍이 이혼해 30년 전에 비하면 꼭 10배나 늘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그중에서도 대구 지역이 가장 심각하다니 어찌된 영문인가.
대구 지역의 이혼 신청 건수가 혼인 신고 건수의 85%선에 육박한 것으로 최근 밝혀졌다. 대구지법 가정지원에 따르면 지난 한 해 접수된 이혼 신청은 모두 1만2천660건이다.
같은 기간 접수된 혼인 신고 1만4천934건의 84.8%에 이른다. 이혼 건수도 9천500여건으로 74~75%선이다. 10쌍이 혼인 신고를 하고, 8.5쌍이 이혼 신청, 7쌍 이상이나 이혼했다. 기준 시점은 2000년과 2001년으로 다르더라도 대구 지역 이혼율이 전국의 2배가 넘는 것은 심각하다. 대구 사람들의 충동적인 기질 때문일까.
우리사회에는 지금 부모 있는 고아들이 수없이 많다. 그들은 해외로 입양되거나 기관에 의탁돼 자라고 있다. 청소년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건 가정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북에 두고 온 아내를 평생 그리며 혼자 살다 지난해 작고한 장기려 박사의 순애보가 한동안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여자의 미덕인 '열녀'나 장기려 박사 같은 '수절 남편'이 옛날 얘기만은 아니다. 이혼은 우리 사회의 도덕 불감증이 빚고 있는 불행의 씨앗이 아닐는지 새삼 생각해볼 문제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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